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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남면 금곡리 효열부영산신씨효열비(懷南面 金谷里 孝烈婦靈山辛氏孝烈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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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남면 금곡리 효열부영산신씨효열비(懷南面 金谷里 孝烈婦靈山辛氏孝烈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8. 12. 17. 09:02



회남면 금곡리 마을총비에 있는 효열부영산신씨효열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효열부영산신씨소성여사기적비(孝烈婦靈山辛氏小成女史紀蹟碑)라고 쓰여 있으며 후면에는 영산신씨의 효열내용이 적혀있습니다.




엣부터 효열선행이 지극하면 나라에서 포상하여 만인에게 귀감으로 삼는 미풍이 있었다.

근래 우리 고을 회남면 금곡리에서 한 효열부가 배출 되었으니 이분이 바로 신소성여사이다

여사는 영산인으로 1868년에 충북 청원군 문의면 산덕리에서 태어나 17세에 양규화에게 출가하였다.그러나 가세가 어렵고 부군이 질환을 앓고 있어 항상 고생하면서 살던 중 하루는 부군의 병세가 심히 위급하여 마침내 기절하고 말았는데 온 집안 가족들이 당황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통곡만 할뿐인데 당시 26세 밖에 되지 않았던 여사는 태연히 자신의 외손 약손가락을 돌로 짖찧어 그 선혈을 기절한 부군의 입에 흘려넣어 수시간 만에 회생케 하였고 이 후에도 부군이 기절할 때마다 수차례 이와 같은 일을 반복함에 따라 끝내는 손가락 한마디를 잃게 되었다. 또한 부군이 심한 욕창으로 고통을 당함에 30여년간을 입으로 빨아내는 등 간호끝에 낫게 하는 등 부군을 위하는 일에 신명을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1937년 9월 17일 부군이 죽자 당시 65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예로서 시묘를 마치고 일생동안 성묘를 게속하니 모든사람으로 부터 열부라는 칭찬을 듣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