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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한면 오정리 모선재(水汗面 梧亭里慕先齋)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수한면 오정리 모선재(水汗面 梧亭里慕先齋)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9. 2. 11. 16:01

 

 

수한면 오정리에 있는 경주최씨관가정공파(慶州崔氏觀稼亭公派)의 재실 모선재입니다.

오정리는 본래 보은군 수한면의 지역으로서 오동나무 정자가 있었으므로 오동정이 또는 오정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오정리라 하였습니다.

 

오정리에서 보은으로 가는 쪽에 오른쪽으로 야트막한 야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모선재(慕先齋)이라는 편액을 걸고 있으며 재실옆으로 건립기념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경주 최씨(慶州 崔氏)는 최치원(崔致遠) 이후(以後) 26파로 분파(分派)되었으며,

그중 관가정 청파(觀稼亭淸派), 사성공 예파(司成公汭派), 화숙공 현우파(和淑公玄祐派), 광정공 단파(匡靖公鄲派), 정랑공 호파(正郞公灝派), 충렬공 광위파(忠烈公光位派)6개 파가 주축을 이룬다. 최치원·최언위(崔彦撝)와 함께 3최로 불린 최승우(崔承祐)890(진성여왕 4) 당나라에 건너가 3년 만에 과거에 급제하여 문장으로 명성을 떨쳤고, 최언위는 885(헌강왕 11) 당나라에 유학하여 문과에 급제하고 집사성시랑에 올랐으며 고려 건국 후 태자사부(太子師傅문한(文翰)을 거쳐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다. 신라 말에 원보(元甫)를 지낸 최은함(崔殷含)의 아들 최승로(崔承老)는 당대의 명신이자 뛰어난 학자로 명성을 날렸다. 국가의 전반적인 정책을 정리한 시무28(時務二十八條)를 상소하여 고려 왕조의 기초를 확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