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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백면봉죽리송강정철신도비(文白面鳳竹里松江鄭澈神道碑) 본문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정철의 공적비.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은 조선의 문인이자 정치가이며, 가사문학의 대가이다. 송강 정철 신도비는 정철의 공적을 적은 비석이다.
송강 정철 신도비는 정철의 사후 그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본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옛 지명 고양군 원당면 신원리]에 있던 묘소를 현재의 자리로 이장하면서, 1665년(현종 6)에 사당의 건립과 함께 우암 송시열이 글을 짓고 김수증이 글씨를 썼다.
진천에서 지방도 17호선을 따라 청주 방향으로 가다 사석삼거리를 지나면 도로변에 정송강사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다. 여기에서 우회전하여 봉죽리 쪽으로 3㎞쯤 들어가면 어은이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이곳에 정송강사가 있다. 신도비는 정송강사 입구 홍살문 앞 남동쪽에 있으며, 행정지명으로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531번지에 속한다.
신도비는 정면 3칸, 측면 3칸[3칸이지만 비를 중심으로 앞뒤 반 칸 정도의 퇴를 단 형태로, 실제 너비는 두 칸으로 직사각형 형태임]의 목조 와가로 팔작지붕의 보호각 안에 있다. 비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거북등 모양의 귀부[받침돌]에 비좌를 파고, 그 위에 높이 250㎝, 폭 101㎝, 두께 43㎝의 비신을 세우고 팔작지붕 형태의 이수[지붕돌]를 올린 모습이다. 비석의 비문은 사방에 새긴 사면비로 글씨는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신도비의 비문은 1684년(숙종 10) 우암 송시열이 글을 짓고, 곡은 김수증이 전액(篆額)과 글씨를 썼다. 비석의 뒷면과 동쪽 면은 송시열이 추기(追記)[본문에 덧붙여서 씀]한 것이다. 비문의 내용은 정철의 일반적인 생애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별한 내용으로는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함께 사가독서(賜暇讀書)한 기록을 적어놓고 있다.
신도비는 1684년 정철의 묘소가 현재의 자리로 옮겨지면서 건립한 것으로, 1996년 1월 5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7호로 지정되었다. 비는 비각 안에 보호되고 있으며, 2009년 중수하였다.
비에 새겨진 금석문자는 인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고적 자료로, 당사자는 물론 당시의 여러 시대적 상황을 재조명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정철의 신도비는 조선 시대의 문인이자 정치가이며, 가사문학의 대가였던 그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도비이다. 따라서 이 비는 정철의 생애와 더불어 가사문학의 창작 배경을 유추해볼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며, 특히 국문학 관련 공부를 하는 후학들에게 산 교육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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