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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면 가산리 교하노씨효열비(南一面 駕山里 交河盧氏孝烈碑)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남일면 가산리 교하노씨효열비(南一面 駕山里 交河盧氏孝烈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9. 11. 29. 15:55



이 효열비는 1975년에 인동인(仁同人) 장인수(張仁壽)의 처 교하노씨(交河盧氏, 1905~)의 효열을 기리어 세운 비석이다.

비문은 노장우(盧章愚)가 짓고 조수형(趙壽衡)이 썼다. 1974년에 세운 비각은 정면 1간, 측면 1간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으로 사면을 홍살로 막았다.

가산2리 원골마을입구에 있으며 원래 가산리는 인동장씨들의 세거지이다.

효열부교하노씨비(孝烈婦交河盧氏碑)라고 비석의 전면에 적혀있으며 좌우 후면에는 교하노씨행적이 국한문 혼용으로 기술되어있다.







15세에 인동장씨가문으로 시집을 와 25세에 남편이 병을 얻어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죽자 삼년간 조석으로 남편의 무덤을 돌보았으며 슬하에 1남2녀를 휼룡히 키워냈다.그후 성균관에서의 표창을 받았다 근간에 열부로 칭송이 자자하니 유림에서 추천하여  유도회 충북본부에서  효열비를 세웠다.



비문을 쓴 노장우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유학자이다.
본관은 교하(交河)이고, 자는 명보(明甫)이며, 호는 금사(錦史)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신송리 출생으로 체화당(棣華堂)의 사촌동생인 서암(西庵) 노덕원(盧德元)의 12대 손이다.
어려서부터 어질고 총명하여 소년기에는 매은(梅隱) 오영호(吳榮鎬)와 소강(小康) 이인상(李寅尙), 남계(楠溪) 신창모(申昌模)의 문하에서 경학을 공부하고 스승의 유지(遺旨)에 따라 일제하에서 학업을 단념하고, 오직 유학의 길만을 걸었다. 스스로 수양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효도하고 친우와 화목하는 등 유학자의 풍속을 지켰다.

각 서원의 원장(院長)과 청주향교 장의(掌議)에 세 번 선출되었고, 성균관 전학(典學)을 역임하고 유학의 발전에 많은 공을 세웠다.

『금사문집(錦史文集)』이 있다.신송리 체화당사앞에 공적비가 1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