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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동면 군자리 김종립충신각(孟洞面 君子里 金宗立忠臣閣)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맹동면 군자리 김종립충신각(孟洞面 君子里 金宗立忠臣閣)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9. 12. 18. 11:38



맹동면 군자리에 있는 김종립충신각이 보수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비내리는 군자리를 찾았습니다.

뿌연 물안개 피어오르는 저수지를 바라보며 충신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붕이 물이 새서 보수를 했다고 하는데 이왕 보수를 할거면 나머지 부분도 같이하지....

충신각을 이루고 있는 여러부재들이 많이 상했습니다 나무들도 썪은곳이 있고 말이지요




김종립은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이다.
김종립(金宗立)[?~1636]은 1624년(인조 2) 무과에 급제하여 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에서 주부에 이르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진천현 초관(哨官)으로서 충청감사 정세규를 따라 광주(廣州) 험천(險川)에서 적과 싸우다가 대패하였다.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정세규를 찾으려 할 때 한 장교가 “지금 나와 같이 도망하여 이 위급을 피하자”하였으나, 정색하며 “네가 만일 도망을 가면 내가 먼저 너를 죽일 것이다”하면서 남은 병사를 정돈하여 분신전진(奮身前進)하다가 중과부적으로 전사하였다.


현감 이충운(李翀雲)이 시를 지어 애도하기를,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처음 뜻은 그대와 내가 같았으나/ 손에 붓대 잡고, 허리에 활을 차는 데서 재주는 달랐도다/ 그대가 나라 일에 죽을 때에 나는 구차하게 살았으니/ 남을 향해 뜻이 서로 같았다고 말하기 부끄럽네”라고 하였다.

진사 채진형(蔡震亨)이 전기(傳記)를 지어 김종립의 충절을 자세하게 기록하였으나 조정에서의 포상이 없었다. 1704년(숙종 30) 손자 김문상이 상언하자, 조정에서 김종립의 충절을 인정하여 정려(旌閭)를 명하고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同知中樞府使)에 증직하였다. 이듬해인 1705년(숙종 31)에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군자리에 ‘충신정려문’을 건립하였으며, 권상하(權尙夏)가 묘갈명을 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