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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막읍 비두리 옥황상제칠성제군성전비(文幕邑 碑頭里 玉皇上帝七星諸君聖殿碑) 본문
문막과 귀래면 비두리의 경계인 사흥(원래 모래사를씀) 이란 마을이 있다. 법정명으로는 문막읍 비두2리이다.
문막읍의 원래 명칭은 사제면(沙堤面), 미내면(彌乃面)이라 불리었으나, 1914년 4월 관할구역 변경에 따라 사제리는 흥업면에, 기타 리는 건등면(建登面)으로 개편하였으며, 1937년 5월 건등면을 문막면으로 개칭하였고, 1995년 1월 도농복합형태의 시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원주시와 원주군을 통합하여 도농복합형 원주시가 되면서 그해 3월에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으로부터 대둔리 일부를 편입하였고 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국도변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바른쪽에 마을 회관이 있고 그 옆에 초라 하게 비스듬이 비석이 서 있다. 그것도 마을사람들이 정성들여 세워 놓은 것이라 한다. 이 비석의 높이는 151센치미터 넓이는 60센티미터가 되며 주위에는 건물의 주춧돌로 사용 되었던 것으로 추정 되는 네모골 돌이 4개가 있다. 그 비문의 앞면을 보면 '병인년 하강 옥황상제 칠성제군 승전비 경진 십이월 일입 영풍후인 신석교 처 문화유씨 봉축'(丙寅年下降 玉皇上帝七星諸君 聖殿碑 庚辰 十二月 日立 永豊后人 申錫敎 妻 文化柳氏 奉祝)이라 4줄로 쓰여져 있으며, 비의 뒷면에는 '주상전하 성수만세'(主上殿下 聖壽萬世)라고 쓰여져 있다. 이 비문에 대한 전설 아닌 전설은 영풍후인 신석교의 처 '문화유씨'란 여인은 맹인 점장이로서 점쾌에 옥황상제와 칠성제군의 신기(神氣)를 받아 상당히 신통(神通)하다는 소문이 나돌자 고종의 부인인 민중전(閔中殿)까지도 이 사실을 알게 되어 민비가 이 여인을 데리고 다니며 주상전하(主上殿下) 즉 고종의 성수만세를 기원하여 이 비석을 세워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지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이 여인의 행적이 민비에게 전해 진 경로를 생각 해 보면 민비가 태어 난 곳이 여주이기에 원주와 여주는 조선조시대는 강원관찰사의 관할하에 있었기에 가능 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생활권으로 살펴 보면 비두리에서 여주는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귀래 보다는 오히려 부론과 문막이 생활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한편으로는 문화유씨인 이 여인이 앉은뱅이 옹주를 이 곳으로 데려와 걷게 하여 옹주가 넘었다는 '옹주고개'가 직선거리로 가까운 곳에 남아 있기도 하다.
주상전하 성수만세'(主上殿下 聖壽萬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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