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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 대소원면 노계마을 표지석(忠州市 大所院面 노계마을 표지석) 본문
노계마을 표지석입니다. 다인철소(多仁鐵所)와 익안현(翼安縣)의 유래(由來)를 적은 마을 표지석입니다.
노계(老溪)마을의 유래에 대하여 상세히 기술하여 놓았습니다.
고려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철 및 관련 수공업품을 생산하였던 특수행정구역.
다인철소가 언제 어떠한 경위로 설치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고려사(高麗史)』·『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등의 기록에 몽고군을 격퇴한 공으로 다인철소가 현으로 승격되었음을 전하고 있다.
다인철소는 규모와 생산량, 철 가공 기술과 품질 면에서 고려를 대표하는 철소였고, 이는 규모면에서 국내 최대의 것으로 알려진 대소원면 일대 야철 유적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대몽항쟁기에 있었던 다인철소민의 항전에 대해서는 기록의 미비로 상세한 내용을 알기 어렵지만, 고고학적 발굴성과까지 반영한 최근의 연구에 의해 대체적인 상황을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인철소민의 항전은 1254년 9월 차라대(車羅大)가 5,0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충주를 공격하자, 유학산성(遊鶴山城)에 입보한 다인철소민들이 토착 향리였던 지씨·어씨의 지휘 하에 수성전을 펼친 끝에 거둔 승전이라는 것이다.
다인철소가 몽고군을 격퇴하여 익안현(翼安縣)으로 승격된 후에는 충주목의 속현이 되었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이안면(利安面)으로 불렸다. 1914년 일제에 의한 군·면 폐합에 의해 이안면은 유등면(柳等面)과 합쳐져 이류면[현 대소원면]이 되었다. 다인철소의 위치는 오늘날 충주시 대소원면의 대소리·금곡리·장성리·검단리·완오리·본리·영평리 지역으로 추정된다. 다인철소 [多仁鐵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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