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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숙수사지 출토유물(榮州 宿水寺址 出土遺物) 본문
소수서원내에 있는 화단에 전시된 숙수사지 출토유물입니다.
숙수사지(宿水寺址)의 숙수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조선 초기에 폐사되고 1542년(중종 37) 소수서원이 건립되었다. 지금의 영주 소수서원 일대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과 관련된 유물과 유적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어 이 일대에 사찰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그 사찰이 숙수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숙수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이었다고 전하고 있으나, 출토된 불상들의 편년을 근거로 볼 때 삼국시대 사찰로 추정된다. 그 뒤 숙수사의 사적은 전하지 않으나 고려 후기의 학자인 안향(安珦)[1243~1306]이 숙수사에서 수학하여 18세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안향의 아들과 손자까지 숙수사에서 수학했다는 기록이 있다. 즉, 고려 후기까지는 숙수사가 존재하다가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1495~1554]이 1543년(중종 38) 안향의 고향이며, 또 안향이 공부했던 숙수사 옛터에 사우와 강당을 세우고 유생들을 공부시키기 위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건립하였다. 백운동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으로 1550년(명종 5)에 소수서원으로 사액되었다.
숙수사지는 영주 소수서원 일대에 위치한다. 숙수사지는 순흥면행정복지센터에서 북쪽으로 1㎞여 지점으로 인근에 선비촌·한국선비문화수련원 등이 조성되어 있다.
현재 영주 소수서원 곳곳에서 숙수사와 관련된 유적·유물의 남은 조각들이 확인된다. 보물 제59호인 영주 숙수사지 당간지주와 연화대좌·석등재 등이 남아 있다. 이외에도 숙수사와 관련되는 것으로 보이는 초석재들이 서원의 주요 건물 초석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순흥면행정복지센터에 보관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인 영주 읍내리 석불입상도 이곳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한다.
1953년 12월 영주 소수서원에 인접한 학교 운동장 공사 중 당간지주에서 서쪽 150m 지점에서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 소형 금동불상 25구가 일괄 출토되었다. 이 불상들은 여래·보살·반가상·탄생불·신장상·공양자상 등 종류가 다양한데, 지금은 국립대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숙수사지에서 출토된 25구의 불상과 같이 한 장소에서 이처럼 많은 불상이 발견된 것은 드문 일이다. 특히 그중에서 제작 시기가 삼국시대로 추정되는 11구의 불상은 출토지가 확실한 신라 불상의 사례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따라서 숙수사지에서 출토된 불상들은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 불상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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