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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백면구곡리은진송씨열녀문(文白面九谷里恩津宋氏烈女門)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진천군(鎭川郡)

문백면구곡리은진송씨열녀문(文白面九谷里恩津宋氏烈女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0. 10. 9. 09:31

 

 

문백면 구산동리 산9에는 은진 송씨 열녀문이 있다.
송씨는 본관이 은진으로 조선 후기 호조참판을 지낸 임대철상산 임씨의 부인이었다. 송씨는 1845년헌종 11 남편이 죽자 장례를 치르기 전날 밤에 남편을 따르기 위해 30세의 나이로 죽음을 택했다.암행어사인 이승수가 은진 송씨의 절개에 대한 글을 본 뒤 감탄해 감사에게 고했고, 이에 1851년철종2 은진 송씨는 정부인으로 증직되고 열녀문이 세워지게 됐다.

 

 

 

그러나 현 시대에 냉정하게 생각해 본다면 남편이 죽었다고 30세의 나이에 죽음을 택하는 것이 옳 선택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그 당시만 해도 일부종사를 외치며 정조를 지킨 여인들이 추앙 받던 시대였지만 여성들도 인간으로서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재가를 할 수도 있는 것일 텐데 보통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는 ‘가족’이라는 개념도 완전히 달라졌다. 전통적으로 아버지의 성을 따르던 것도 합의 하에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도 있고 자녀에 대한 기준도 대폭 완화됐기 때문이다. 사회가 변함에 따라 그 시대에 맞게 변해가는 것 아닐까?

 

 

 

 

 

 

 

 

 

 

 

 

 

 

은진송씨 열녀문(恩津宋氏 烈女門)은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4면을 홍살로 막은 형태이다.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으로 주위에는 시멘트 담장이 둘러져 있으며, 정면으로 출입문을 내어 놓았다. 은진송씨 열녀문(恩津宋氏 烈女門) 처마 밑에는 ‘열녀문(烈女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으며, 내부에는 ‘열녀증가선대부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상산임대철처증정부인은진송씨지여숭정기원후사신해삼월일명정(烈女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總府副總官常山林大喆妻贈貞夫人恩津宋氏之閭崇禎紀元後四辛亥三月日命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