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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물면 백양리 연안이씨 세거지비(甘勿面 伯陽里 延安李氏 世居地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감물면 백양리 연안이씨 세거지비(甘勿面 伯陽里 延安李氏 世居地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0. 9. 13. 20:51

연안이씨들의 집성촌인 듯 합니다

 

감물면 백양리에 있는 연안이씨 관련 각종 유적입니다.감물면 백양리는 평야지에 위치한 마을로 박달산맥이 내려뻗친 야산이 병풍처럼 이루고 있다.배안골에서 뱅골 또는 백양이라 했는데 웃뱅골이라 속칭한다. 백양목이 많이 있어 백양이라는 명칭이 생겼다.자연마을로는 박달, 불당골, 상백양, 하백양 등이 있다. 박달은 송정자(솔정재) 동쪽의 박달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솔정재는 백양 동쪽에 잇는 마을로 소나무가 정자나무 같이 자란 것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불당골은 옛날에 불당이 있어다고 붙은 이름이다.상백양, 하백양은 각각 뱅골 위,아랫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연안이씨 대호군파 세거지비입 니다
효행부 남양홍씨의 행적비입니다
남양홍씨의 행적비의 사면입니다.

 

감물면 백양리에 있는 효열부 남양홍씨 홍순이여사의 정려비각이다.백양리 연안이씨 가문으로 시집와 효성과 더불어 자삭교육에 힘을 써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된 홍순이여사의 행적을 적은 비이다.연안이씨 가문에서 배출된 효자비등과 충신비등과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효열부 남양홍씨의 효열비각입니다.
연안인 이희영의 효행비입니다

 

어려서 부터 지극한 효성과 더불어 성실함이 타의 모범이 되였다.어머님이 돌아가신후 3년여의 조석으로 산소를 찾아 호곡하는 효성으로 인하여 동네와 산소를 잇는 길이 만들어질 정도였으니 사람들의 입으로 그길을 이효자성묘길이라 칭할 정도였다.

아버지도 병환으로 돌아가시자 3년여를 같이 조석으로 산소를 살피고 호곡하였다. 그의 효성과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1931년 유회에서 표창장을 받기도 하였다. 효자 이희승의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 11월에 대한노인회괴산군지회가 주관이 되여 이 효행비를 세웠다.

 

일제강점기 면장을 지낸 이찬익의 혜급불망비입니다

 

이찬익(李瓚翼) 면장(面長) 혜급 불망비(惠及不忘碑)이다.

불망비가 있는 하백양은 감물면의 행정이 현대행정으로 되던 조선말,일제강접기초에 초대면장을 지낸 이찬익이 살던 곳이다.면장으로서 확인되는 분중에서 제일 먼저 손꼽히는 분으로서 일제강점기 시절 면장을 지내는 동안 베푼은혜(恩惠)를 잊지않고자 구월리(九越里)길목에 세워졌다가 1975년에 감물면 백양리에 저수지가 생김으로서 도로변에 옮겨진 비석이다. 재직시 이담저수지 뚝 동쪽 끝의 행상바위가 꿈에 나타나서 이름을 고쳐달라구 현몽하여 인바위로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구전(口傳)되고 있다.

이희보 효자문 옆에 자리하고있다.1969년(己酉年) 감물면 이름으로 세웠다.이희보 효자문옆에도 있으며 새로 건립하여 현재의 자리에도 1기 건립하였다.

불망비의 전면에는 면장이찬익혜급면내불망비(面長李贊翼惠及面內不忘碑)라고 적혀있으며 감물면이름으로 기유년(己酉年)1969년 오월에 비석을 세웠다.

 

연안인 이인서의 공적비입니다

 

이인서(李麟瑞) 1554(명종 9)~1629(인조 7)는 조선 선조 때의 공신으로 자는 응인, 호는 청계당(聽溪堂), 본관은 연안이다. 저헌 이석형의 현손이다.

묘갈명에 의병장의 활동을 기술해놓았다. “섬나라 오랑캐의 난을 당하여 동지들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근왕병으로 활동하기 위하여 임금에게 가려고 했으나 길이 막혔다. 이에 험한 요소에 매복하여 적들의 목을 벤 것이 많다. 도 사람에 알리지 않아 아는 사람이 더욱 치하하고 탄복하였다.” 왜적을 목 베어 죽인 것이 많아도 자랑하거나 알리지 않아도 자연 그 공적이 알려졌다. 후일에 대신들이 조정에 추천하여 별좌 의금부도사 내섬시주부에 연이어 임명되었다. 이어서 곡성과 의홍의 두곳의 현감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이어서 군자감 판관이 되었으나 선조임금의 뒤를 이은 광해군의 패륜행위를 보며 벼슬을 사양하고 삶의 터전이 된 백양리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살았다.
충북 중북부의 대표적인 명산중의 하나인 박달산과 월악산 아래인 신당리 호계의 시내 위에 작은 집을 짓고서 청계당(聽溪堂)이라 현판을 달았다. 후에 사헌부 집의에추증되었다. 묘소는 감물면 이담리에 있다. 감물면 백양리에서는 의롭고 거룩한 뜻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호를 따서 청계당회관 건물과 행적비를 세웠다.【참고문헌】 『괴산군지』

 

연안이씨의 청계당전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