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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면 수리 김원식물망비(沼壽面 壽里김원식물망비) 본문
소수면 수리 느티나무숲에 목비가 있습니다
아나키스트김원식물망비라고 써있습니다.
아나키즘 [anarchism]개인을 지배하는 모든 정치 조직이나 권력, 사회적 권위를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 정의, 형제애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상이나 운동을 말합니다.
김원식은 경성제국대학 시절부터 좌익활동을 하고, 남로당에 입당하고, 당 정치 지도원으로 전쟁을 거치고, 사상범으로 10년간 옥고를 치른 이가 하는 말이기에 무게가 남달랐다. 그는 1958년 좌익활동 혐의로 체포됐으나 남한정부가 강요하는 전향서는 끝내 쓰지 않았다. 하지만 68년 마흔 중반의 나이에 감옥에서 나온 뒤 세상을 보는 인식틀을 새로 짜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대안이라는 사회주의가 사실은 똑같은 작동원리로 사람을 구속하고 괴롭힌다는 사실에 눈떴다. 양대 체제로 나뉜 세계의 한쪽 주인은 자본가였고, 다른 쪽 주인은 당 엘리트였다. 이미 1800년대 중반부터 아나키스트들이 반자본주의 깃발을 들고 대대적으로 활동했지만, 두 체제가 자기들 좋을 데로 기록한 역사에서 이들의 활동은 쏙 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김원식은 환경주의자이자 과학자다. 김원식이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싫어하는 가장 큰 까닭은 두 체제가 개인을 억압하는 동시에 자연과 환경을 억압하고 파괴했기 때문이다. 김원식은 출옥 뒤 오랜 동지로 함께 옥고를 치른 리경구 할머니(75)와의 사이에 아들을 하나 낳았다. 그 아들은 “배만 안 곯렸는데 지대로 커서” 지금은 분자생물학 박사로 미국 국립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김원식 1923. 4. 26 ~ 2013. 9. 12
괴산군 소수면 수리 출생. 서울대 정치학과 중퇴.
국가보안법으로 오랜 감옥살이와 보호감찰을 겪은 후, 60대 중반 환경운동에 투신했다. 1990년대 반핵자료정보실을 운영하면서, 반핵아시아포럼을 제안하는 등 한·일 연대활동과 반핵운동에 매진했다.
일본 시민운동가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아나키즘을 자신의 사상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해외의 아나키즘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한국 아나키즘의 새로운 상을 정립하고자 했다.
『폭력론 노트-비폭력직접행동이란 무엇인가』 외 10여 권의 번역서를 남겼다.
2014.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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