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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면 갈읍리 정운기공적비(七星面 葛邑里 鄭雲淇功績碑) 본문
정운기선생은 독립운동가. 문광면에서 1875년 9월 20일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운개(雲璂)·운기(雲騏)이다. 1913년 풍기에서 채기중(蔡基中)·유창순(庾昌淳)·류장렬(柳璋烈)·한훈(韓焄)·강순필(姜順必)·정진화(鄭鎭華) 등과 함께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을 결성하였다. 그는 풍기광복단에서 무력으로 독립투쟁을 하기 위해 독립군 양성을 위한 무기구입 및 군자금 모집에 힘썼다. 1914년 보은면장(報恩面長) 박창빈(朴昌彬)으로부터 권총 10정을 제공받아 김재성(金在性)에게 주고 친일파 박영효(朴泳孝) 암살 계획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김재성은 암살 계획 시행 직전에 일본 경찰에게 발각·체포되었고, 정운기 또한 공범으로 징역 5개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인 1915년 풍기광복단이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의 박상진(朴尙鎭) 등과 통합하여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를 결성하게 되었고, 그도 이 조직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대한광복회 또한 무력 독립투쟁을 지향하는 단체로서, 국내에서의 군자금 모집이 주요 임무 중 하나였다. 그는 각 도의 재력가 명단을 작성하고 ‘공고문’을 발송하는 등 군자금 모집에 전력했다. 1917년 12월에는 칠곡(漆谷)의 재력가 장승원(張承遠)을 처단하고 도피하던 채기중·강순필 등의 피신을 돕기도 했다. 1918년 조직이 발각되었고 그 또한 체포되어 같은 해 10월 19일 치안법 방해혐의로 공주지방법원에서 예심 판결을 받았으나, 1919년 9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1943년 3월 18일 타계하였다. 정부는 198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으며,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참고문헌】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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