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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 문성공묘(紹修書院 文成公廟) 본문

전국방방곡곡/영주(榮州)

소수서원 문성공묘(紹修書院 文成公廟)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0. 9. 23. 15:40

 

영주 소수서원 문성공묘(文成公廟)는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소수서원 안에 있는 제향 기능의 사당으로, 안향을 비롯하여 안축, 안보, 주세붕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이 건물은 2004년 4월 6일 보물 제1402호로 지정되었고, 영주시청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을 주향(主享)으로 하는 사우로, 1544년(중종 39) 추배(追配)된 문정공(文貞公) 안축(安軸), 문경공(文敬公) 안보(安輔), 그리고 1633년(인조 11) 추향(追享)된 문민공(文敏公) 주세붕(周世鵬)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고 있다. 주향인 안향(1243~1306)은 고려 1260년(원종 1)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286년(충렬왕 12) 왕과 공주를 호종(扈從)하여 중국 원나라에 들어가 『주자전서(朱子全書)』를 보고 주자학을 연구했다. 섬학전(贍學田)이라는 육영재단을 설치하였고, 국학 대성전(國學大成殿)을 낙성하여 공자(孔子)의 영정을 모셨으며, 제기(祭器), 악기와 육경(六經), 제자(諸子), 사(史) 등의 서적을 사들이는 등 주자학의 도입과 정착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기에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로 일컬어진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 장대석으로 마무리한 낮은 기단 위에 둥글게 다듬은 주좌(柱座)를 놓고 배흘림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기둥머리에 주두를 놓고, 첨차를 내어 그 위에 소로가 주심도리의 장혀를 받치고 있다. 보 방향으로는 쇠혀[牛舌]를 내고 안쪽으로는 보아지 모양을 하여 툇간의 보를 받치는 초익공식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가구는 5량으로서 대들보를 전면 고주(高柱)와 후면 평주 위에 걸고, 첨차로 짜인 동자기둥을 놓아 종보를 받치고, 이 위에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맞배지붕의 양측 박공에는 풍판을 달았다. 건물의 좌측과 뒷면에 장대석으로 축대를 쌓았으며, 사방에 돌담을 두르고, 정면에 외단문을 설치하고 우측에 협문을 두었다.

소수서원 내의 주요 건물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잘 보존되고 있다. 여기서는 매년 3월과 9월 초정일(初丁日)에 주세붕이 초안하고 이황이 보완한 홀기(笏記)에 의해 제향을 드린다. 이때에 반드시 주세붕이 창작한 「도동곡(道東曲)」이라는 경기체가(景幾體歌)를 부르는데, 그 뜻은 중국 공자의 도가 회헌(晦軒) 안향에 의해 우리나라로 옮겨진 것을 찬양하는 것이다.

서원의 양대 기능 중 제사를 지내는 건물로, 매년 성대히 제향행사를 치르고 있다. 건물도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시대의 건축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