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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면 효촌리 면장한인구송덕비(南一面 孝村里 面長韓仁求頌德碑) 본문
남일면 청사마당에 있는 면장을 지낸 한인구의 송덕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전면장한공인구송덕비(前面長韓公仁求頌德碑)라고 적혀있으며 후면에는 그의 송덕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작은 마음에(小心)
매화꽃처럼 곱게 피어났고
대보다 곧은 당신의 성품
왜인들 모진발에 짓밞혀
너와 내 이웃이 굶주림 받던 날에
당신은 사슬에 묶여가도
내 이웃과 동포를 알고 지켜주고 살으셨나니
우리 어찌 당신을 기억해보지않고 살으리오
(小心은 한인구 의 호)
국사봉은 남일면 소재지에서 효촌리 (孝村里) 방향 5㎞ 즈음에 위치한 해발 281m의 봉우리다.청주 한씨의 시조가 이 곳에 자리를 잡은 후 많은 후손들이 관직에 나아가게 되었으므로 이 곳을 ‘국사(國士 ; 나라의 선비)’의 땅, 즉 국사봉(國士峯)이라 하였고, 또 장상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해서 국사봉(國師峯)이라 부르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공출(供出)이라는 명분 아래 수확량의 대부분을 수탈해갔다. 인근의 백성들 대개가 허기에 신음하고 있을 때, 남일면 초대면장 한인구(韓仁求) 는 한밤중에 장정들을 동원하여 들에 베어놓은 벼를 모두 국사봉 숲속으로 감추었다. 그러나 작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일본경찰에게 발각되어 국사봉 기슭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일본 경찰에 연행된 한인구는, “내 나라 내 땅에서 내가 농사를 지었는 데도 우리는 굶어야 하고 현해탄 건너 일본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서 배불리 먹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고 반박을 하였다. 마을민은 한인구의 꿋꿋한 의지에 더욱 힘을 얻어 항일운동에 대거 참여하게 되었다. 후에 면민들은 한인구 면장의 면민사랑을 기억하기 위하여 남일면사무소에 한면장의 송덕비를 세워 그의 면민사랑의 뜻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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