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용리 삼층석탑이 있는 가덕면에는 가덕(加德)이라는 지명에 대하여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습니다. 지명은 인차리에 위치하는 가덕산에서 유래되었다. 지명 유래와 관련하여 향토 사료에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 시대 인조가 보은을 가기 위해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을 때 밖에서 은은한 풍악 소리가 울리며 백발노인이 다가와 '장차 이 고을은 선비의 고장으로 숭상될 것이오나 삼가 헤아려 주시옵소서'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인조가 놀라 잠에서 깨어 앞산을 바라보니 영롱한 빛이 산봉우리를 감싸고 있어 '더욱 덕을 가하라.'라는 유시를 남겼는데, 이때부터 지명이 가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에전에는 가정집에 부처를 모신 절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는데 지금은 가정집으로 바뀌었는지 절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수가 없다.화단 한 켠 소박한 몸돌 앞세우고 햇빛바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 탑이 있는줄 알고 찾아주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요?

 

 

가덕면 청룡리사지에 남아있는 폐석탑으로 각부가 많이 결실되어 파손이 심한 편이다. 사지였던 민가 앞마당에 유존하며 현재 2개의 옥신석과 옥개석만이 남아 있다. 지하에 반쯤 매몰된 초층옥신(初層屋身)은 1매석으로 되어 있으며 전각(轉角)의 반전도(反轉度)가 약하고 층급받침은 3단이다. 옥개석의 한쪽 귀가 떨어져 나갔으며 상태가 양호하지 못하고 있다. 옥개석 윗면에는 각형(角形) 옥신괴임이 조출되었고 그 위에 2층 옥신을 받고 있다.

2층 옥신의 면석(面石)에는 우주(隅柱)가 표현되지 않았으며 폭이 매우 좁고 초층 옥신석과 비례가 맞지 않아 제짝이 아닌 듯하다. 2층 옥개석도 체감이 급격히 줄어 역시 초층 옥개석과 비례가 맞지 않으며 층급받침은 3단을 이루었다.

이로 보아 중간에 3층정도의 탑신부가 결실된 것으로 보인다. 상륜부(相輪部)는 후에 다른 석재들을 올려놓은 것으로 석탑부재가 아니다. 조성시대는 각부의 조각수법이 퇴화한 점으로 봐 고려말로 추정된다. 탑의 규모는 전체높이 80cm, 초층옥개석폭 45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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