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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성면 관정리 백석정비석(琅城面 官井里 白石亭碑石)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낭성면 관정리 백석정비석(琅城面 官井里 白石亭碑石)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1. 7. 31. 09:18

 

현재의 백석정 건물은 신교가 이 주변 경관 중에서 특히 흰 돌(白石)을 유독 좋아하여 1677년 봄에 창건을 하고 이후 1737년 그의 손자인 화은처사가 중수를 하였고 다시 1927년에 공의 7대손이 2차 중수, 1987년에 보수를 한 것으로 사진의 기문비석은 정자의 창건과 중수, 2차 중수 등의 내력을 수록한 비석으로 1986년 고령신씨 중종에서 건립을 하였다.

 

 

백석정기의 내용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흰돌위에 정자를 지으시고 그 이름을 백석정이라 하시니 이 정자는 나의 종숙께서 손수 지으신것이다. 종숙께서는 젊은시절 기이한 기품을 지으셨고 만리심이 있으셨는데 갑자기 세상살이에 싫증이 나시어 사방을 둘러 보시니 마침 소유처럼 경치 좋은곳이 있는지라 대체로 질타당할것을 무릅쓰고 그 풍광에 빠지시어 휘파람 불며 오히려 세찬 바람을 아랑곳 않고 큰 물결 헤쳐 낚시를 장만하고 찾은곳에 나가셨으니 그 얻은곳은 묵정 왼쪽에 백석이었다. 그 돌은 개울에 붙어 엎드려 너덧길이나 솟아 일어서 있고 그 곳에서 북으로 삐친 모래여울은 삼백무나 가까이 되고 남으로 보이는 석봉은 멀리 이리나 되어 비록 환한 골속 옆이지만 먼곳까지 두루 볼만하고 뒤에는 태고의 소나무들이 어우러져 조금 서늘하며 맑은 그늘이 가득한 곳이다.

 

 

 

공께서는 드디어 산을 뚫어 좁은길을 내고 돌위에 시렁을 걸어 정자를 지었는데 그 왼편을 얽어 방한칸을 꾸며 넣으니 달이 바뀌기전에 금방 날아갈 듯 하고 용머리에 모인 서가래며 사자등에 엎힌 난간등의 단청채색에 햇빛이 빛나니 완연히 한 폭 그림속에 풍경같다.우러러 보면 높은봉에 이어진 봉우리 그림자가 첵체와 자리사이에 숨었다 나타났다 가리졌다 이지러졌다 하고 구비보면 맑게 흐르는 세찬 여울이 창문아래 구불구불 얽히어 연달아 흐르는 지라 마치 물이라도 뿌려 싸우는 듯 지극히 시원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쏟아지는 빗속에 우연히 우뚝 서있는 듯 함을 생각하게 한다.

 

백석정 들어가는 초입에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어른께서는 어느 날 손님을 이끌고 이곳에 오르시면 바람이 불어도 돌아가시지 않고 눈이 내려도 돌아가시지 않으시며 흥이 다 풀리지 않아도 돌아가시지 않으시며 언제나 해가 질무렵이면 붉은 난간에 기대앉아 동산에 거울같은 달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이윽고 달이 돋아 채각의 그림자가 물위에 거꾸로 비추고 이에 놀란 물고기가 뛰어 물결을 일으키면 문득 술을 부르고 배를 저어서 하늘의 밝은 달을 쫓아 달빛 흐르는 물결을 거슬리며 혼연히 즐기시느러 집에 돌아 갈것을 잊으신 듯 하였다.

 

 

나에게 이런 뜻을 적어주기를 바라시기에 나는 이르노니 "흰것이 채색을 받으면 바탕이요돌보다 굳은것은 지조라"나의 채색을 받은 흰바탕으로서 나의 돌같은 지조를 갈고 닦아서 애당초 하던일을 도리켜 명백함을 숭상하고 천부의 근본을 지키고자 돌을 베개하고 저 흐르는 물로 양치질 하며 은총을 놀랜듯이 사양하고 아무 근심없이 숨어지내니 어찌 정자를 이름한 뜻과 터전의 이름이 꼭 들어맞지 않으리오 비록 그러나 산수는 어진 성품과 총명한 지혜가 없는 자는 줄거울것이 없으며 강산은 호걸을 기르되 그 시대와 만나고 못만남은 또한 운수이거늘 어찌 백석이 황석과 같이 않음을 알것이요" 하니 그 어른께서 이르시되 "자네의 말이 어찌 지조로 말 잘하여 이르는가 내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네" 하시고 청하여 정자벽에 써서 걸으시고 스스로 살피리 라고 하시었다.  숙종삼년정사춘 종질 필청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