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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니면 문숭리 용담사석불입상(薪尼面 文崇里 龍潭寺 石佛立像)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신니면 문숭리 용담사석불입상(薪尼面 文崇里 龍潭寺 石佛立像)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1. 7. 31. 11:35

 

원평리에서 원평리미륵을 보고 용원저수지 둑아래부근에 위치한 용담사를 찾았습니다.용담사는 찾는길은 교행이 불가능하나 중간중간 차의 피난지가 있어 찾는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경내에는 널은 주차장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용담사석불로 불리며 경내가 아닌 야산  언덕부근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용담사(龍潭寺)는 충주시 신니면 문숭리 산16번지에 있다. 1962년에 창건되었다. 고려시대의 석불 입상이 있다. 1978년에 송암리에서 대좌를, 선당리에서 석불을 옮겨온 것이다. 법화종 계열이다. 대좌와 석불을 접합하여 놓았습니다.

 

족좌와 석불의 접합부분이 보입니다.

 

‘송암리관련항목 보기 불상’ 또는 ‘선당리 석불’ 등으로 불려왔으나 1978년 12월 지금의 용담사로 옮겨져 관리되고 있어, 이후로는 ‘용담사 석불입상’으로 명칭이 통일되어야 할 것이다. 이 불상은 일제 말기 신덕저수지 제방공사 때 하천에서 발굴되었던 것을 인부들이 저수지 아래 선당리에 옮겨 세워 불당을 조성하고 보호해왔다. 그래서 선당리 석불로 불려왔다. 1977년 4월 송암리 팔송 밭에서 연화대좌(족좌)가 발견되어 불상과 함께 용담사로 이전했다. 불상의 원래 위치에 관해서는 더욱 조사되어야 하겠으나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충주 숭선사의 당간지주 한 족이 저수지 공사에 사용되었다 하고, 간은사지에서 ‘대정 22년’이란 명문와가 출토된 바 있어 이 간지로 보면 고려 명종 12년이므로 이 불상의 양식적인 면도 거의 이 시기에 해당된다고 추정된다. 따라서 이 불상 역시 숭선사에서 반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의 숭선사지의 모습입니다.

 

 

용담사 석불입상의 불상대좌는 직경 1m, 높이 0.7m의 원통형으로서 하단부에는 앙련이 단판으로 조각되었고, 대좌 중간의 전면에 양발(양족)을 직립시켰으며, 의문이 연화좌에까지 흘렀다. 저수지를 사이에 두고 불신과 대좌가 따로 있었던 것을 시멘트로 보합하여 지금 위치로 이전했던 것이다.


 

족좌의 조각이 선명합니다.

 

 

신덕저수지는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과 충주시 신니면·노은면 경계의 남쪽에 위치한 수레의산의 동사면, 신니면과 노은면 경계의 중앙부에 있는 웃고개와 능안고개의 남사면, 음성군 생극면 오생리와 신니면 광월리 경계 못고개의 동남사면, 남쪽의 송암저수지 등에서 흘러내린 요도천(堯度川)이 유입되고 있다. 신덕저수지 남쪽 도로변은 신니면 송암리이며 서쪽은 신니면 문락리 동락동이다. 신덕저수지는 문숭리가 70%, 송암리가 30%를 차지하고 있다. 일명 용원저수지 또는 용당저수지라고도 한다. 신덕저수지 축조로 인하여 무태마을 주민들은 내포마을로, 검은바위마을 주민들은 송암리 등으로 이주하였다.  신덕저수지는 1944년 착공하여 1949년 10월 14일 준공되었는데, 현재 신니면·주덕면·대소원면 등 세 개 면의 평야지대에 관개용수를 제공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축조된 용원저수지 입니다.

 

석불입상 옆으로 토종벌통이 많이 놓여 있습니다.
귀 부분의 파손을 이번에야 보았습니다.

 

 

이 불상은 소발 두정 위로 보개를 받치기 위한 테를 양가함으로써 마치 머리띠를 한 것처럼 보인다. 원래 있었을 보개는 결실되고, 최근에 용담사에서 방형보개를 새로 만들어 얹었다. 얼굴은 전면에 약간의 미소를 띤 듯하면서도 어색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턱 아래로 이중턱을 표현했으며, 이마에는 백호공이 있고, 양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았으며, 목에는 삼도의 흔적이 또렷하다. 얼굴에는 살이 올라 풍만한데 눈썹은 반원형이고, 눈은 반개했으며, 콧등과 입술 등이 둥그렇게 표현되었다. 얼굴에 비해 어깨 폭은 위축된 형상이다. 법의는 통견으로 가슴 앞에 올려놓은 오른손의 손목을 덮었으며, 왼손에 걸쳐진 의문은 U자형으로 길게 흘러 무릎에까지 내렸다. 의문은 몸체의 측면을 돌아서 배면에까지 장식되었다. 수인은 대체로 이웃에 있는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과 유사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신체표현이 현저히 약식화되어 수직형으로 내렸다.

 

후보된 보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