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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원면 완오리 김용근여사추모비(大召院面 完五里 金龍根女史追慕碑)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대소원면 완오리 김용근여사추모비(大召院面 完五里 金龍根女史追慕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1. 9. 9. 13:10

 

2002년 원주원씨충주종친회에서 대소원면 완오리 원주원씨충주종중묘지의 입구에 세운 강릉인 효절부 김용근여사의 추모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효절부강릉김용근여사추모비(孝節婦江陵金龍根女史追慕碑)라고 적혀있으며 후면에는 김여사의 행적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비석의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여사의 성은 강릉김씨이며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 446번지에서 아버지 김노경씨와 어머니 유씨의 4녀중 막내딸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착한 천성에 효심이 지극한 딸로 방년에 충주시 금가면 매화리 하시부락에 거주하는 원주원씨시중공파계 음성공후 사직공파 26세손 용팔과 결혼하여 시부모님께 효도하고 부군 잘 섬기며 아들형제와 딸하나를 출산하여 다복한 가정생활을 하던 중 아...슬프도다 부군이 우연히 병을 얻어 10여년간 사경을 헤매는 부군에게 팔방으로 쫒아다니며 약을 찾아 봉양하였으나 백약이 무효하여 끝내 40세의 젊은 나이에 운명하시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당시 여사의 나이 35세의 청춘에 혼자되어 2남1녀를 기르던 중 맏아들 철희는 18세에 6.25사변때 적에게 납치되어 행방불명 되었고 남은 어린 남매와 홀로계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무명짜기와 명주길쌈등 주경야독 근검노력으로 생활을 하시면서도 논 2000여평 과 밭 1500여평을 마련하는 등 부지런하고 검소한 생활이 다른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어 마을사람들로 부터 추앙과 존경을 받았으며 또한 자녀교육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시어머님 사후에는 봉제사등 책임을 통감하고 온 정성을 다 기울였으며 심지어는 자손녀들의 교육에도 관심이 높아 대전 청주 인천 제천등지에서 자손녀들이 어린시절의 할머니의 높은 교육열과 근건함이 밑거름이 되어 올바르고 휼룡하게 성장하였다. 김여사는 노후에 선조님들의 시제봉행시 후손들의 불편을 염려하여 선영지 아래 묘막을 건축하도록 아들 양희에게 명하여 백미 육백가마니의 공사비(약 1억원)을 들여 준공하였으나 채 준공전에 또한 꿈에도 애타게 그리던 큰아들 철희도 끝내 보지 못함은 물론 아들의 효성을 누려보지도 못한 체 77세의 연세로 운명을 마감하니 인생이 너무나 허무하고 통탄하여 여사님의 효행심과 굳은 절개 및 선조님들에 대한 봉행심이 휼룡함을 길이 후손에 전하고자 여사님의 기일 십주기를 맞이하여 여기 추모비를 세우노라 서기 2002년 2월24일 원주원씨 충주종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