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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북면 석호리 손대창효자문(郡北面 石湖里 孫大昌孝子門) 본문
손대창(孫大昌, 1752년 영조 28~?)은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1752년(영조 28) 군북면 막지리莫只里 장고개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도리를 알았다. 숙종·영조 때의 명현 역천櫟泉 송명흠(宋明欽, 1705~1768)의 제자로 학식과 덕망이 고명하여 유림의 추앙을 받았 으나, 부모 봉양을 위하여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그가 어려서 스승 송명흠에게서 공부를 할 때, 다른 학생들은 모두 시원한 그늘에서 책을 읽었지만 그는 뙤약볕 아래에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스승이 그 까닭을 물으니 부모님 들이 뙤약볕 아래에서 일하고 계신데 자식 된 도리로 시원한 그늘에서 책을 읽을 수 없다 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묘소 옆에 여막을 짓고 시묘하면서 죽으로 끼니를 대신하였다. 이때 여막이 깊은 산 중에 있었는데 매일같이 호랑이가 와서 그를 보호하는 듯이 엎드려 있다가 새벽이 되면 돌아갔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 제사를 지낼 때는 『주자가례』등 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 좋아하던 개장국 등 을 아랫목에 차려놓고 살아계실 때 와 똑같이 모셨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는 집안사람 에게 자신의 제사에는 고기와 생선을 쓰지 말라고 유언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효행을 고장 유림들이 임금에게 상소하여 1881년(고종 18)조정에서 효자문을 세웠다.
성균관 대제학을 지낸 박성양(朴性陽, 1809~1890)의 문집 『운창문집芸窓文集』에 손대창의 효행을 기록한 「손효자정려기孫孝子旌閭記」가 전하고 있다. 효자문에는 ‘효자밀양손대창지려孝子密陽孫大昌 之閭’라는 편액이 걸려 있으며, 군북면 막지리莫只里 장고개 산마루에 현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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