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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면 서대리 열부광산김씨비(安內面 西垈里 㤠夫光山金氏碑) 본문
안내면 서대리 서대저수지 밑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장덕산張德山의 처 광산김씨(光山金氏, 19세기 말엽)의 열부비입니다. 광산김씨는 안내면 정방리에서 태어나 안내면 서대리 장덕산張德山에게 출가하였다. 시집을 온 뒤 그녀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시부모를 봉양하고 남편에게 순종하며 살았다. 그러나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남편이 돈벌이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자, 광산김씨는 남편 몫까지 맡아서 집안일을 하고 시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며 살았다.
이후 4년 만에 남편이 귀국하였는데 심한 병에 걸려 폐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때부터 그녀는 남편 간호에 온 정성 을 다하며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야만 했다. 남편의 병은 십 년을 넘어 계속되었으나, 한 번도 눈살을 찌푸리거나 불평을 하지 않고 십 년을 언제나 똑같이 성심과 정성을 다하여 병간 호에 최선을 다하였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입을 모아 그 녀의 정성과 수고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정성은 효과를 보지 못하고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남편을 잃은 슬픔으로 식음을 전폐하고 지내다가 시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신 앞에 촛불과 향을 밝히는 일은 자신이 직접 하겠다며 밤중에 방에 들어갔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도 인기척이 없고 나오지도 않아 문을 열어보니 극약을 먹고 자결하여 이미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있었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남편을 따라 순절하자 마을 사람들이 만고의 열녀라고 칭송하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하여 1913년 열부비를 세웠다. 그 후 1977년 비석을 경지정리 관계로 안내면 서대리 현 위치에 옮겨서 보존하고 있다. 비석의 전면에는 ‘열부유인광산김씨지비烈婦儒人光山金氏之碑’라고 새기고 후편에는 그녀의 행적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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