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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도면 시목리 월송정(賢都面 枾木里 月松亭) 본문

통합청주시/서원구(西原區)

현도면 시목리 월송정(賢都面 枾木里 月松亭)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5. 29. 09:44

 

 

 

월송정은 청주시 현도면 시목리 새터말 서북쪽에 있는 남산(79m) 정상에 동향하여 위치하고 있다. 강 건너로는 매화낙지형(梅花洛地形)의 명당이 있다는 매방산(梅芳山, 182m)과 마주하고, 절벽 아래로 많은 사연을 간직한 금강이 유유히 흐르며, 오래된 소나무가 시위하듯 정자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월송정 주변은 시인 문객들이 팔경시를 읊을 만큼 예로부터 절경으로 유명하였다. 정자 내부에 걸려 있는 `마포귀범(馬浦歸帆, 마포나루로 돌아오는 돛단배)'이란 오유립이 지은 시를 통해 당시의 평화롭고 서정적인 풍경을 상상해 볼 수가 있다.

월송정이 있는 시목리는 마을에 감나무가 많아서 붙어진 이름이다. 이곳은 토양과 기후조건이 감나무가 자라기에 알맞다고 한다. 지금도 윗감나무골, 아랫감나무골 등 자연마을이 있다. 월송정에서는 여러 자연마을과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당시 월송정에서 내려다보는 늦가을 감나무가 있는 마을풍경은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월송정은 광해군 때 오유립(吳裕立, 1575~1658)이 세운 정자이다. 오유립은 어려서부터 학식과 문장이 탁월하였다. 1613년(광해군 5)에 광해군의 실정(失政)을 보고 벼슬길을 단념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후 월송정을 세우고 은거하면서 시를 읊는 것을 즐겼다. 또한 오명립(吳名立)·오시립(吳時立) 등과 함께 문의(文義)에 송인수(宋麟壽)를 모실 노봉서원(魯峯書院)을 건립하였고, 후학을 가르치는 등 향풍(鄕風)을 진작시켰다. 월송정에서 남쪽으로 약 2㎞ 정도 떨어져 족형(族兄) 오명립이 세운 지선정이 있는데, 오유립은 이곳에서 강변을 따라 오명립과 왕래하면서 심회(心懷)를 다스렸다.

현재의 월송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외벌대의 낮은 기단 위에 사다리꼴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고, 사방이 트여 있는 전체가 마루인 구조이다. 정면을 제외한 3면의 중인방 위로는 홍살을 설치한 것이 특이하다. 내부에는 1779년(정조 3)에 송환기(宋煥箕, 1728~1807)가 쓴 “한수추월(寒水秋月)”과 “대동정송(大冬挺松)”이란 현판과 1882년(고종 19)에 송근수(宋近洙, 1818~1903)가 쓴 중수기 및 여러 기문과 시판이 걸려 있다.

 

 

오유립은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학자입니다.  오유립(吳裕立)[1575~1658]의 본관(本貫)은 보성(寶城)이다. 초명은 효립(孝立), 자는 백원(百源), 호는 남산처사(南山處士)와 월송정(月松亭)이다. 15세기 부강면에 입향한 보성오씨(寶城吳氏)의 후손이자 부강면 보성오씨 월송정 진사공파의 파조이다. 오유립은 어려서부터 학식과 문장이 탁월하였다. 1613년(광해군 5)에 벼슬을 단념하고 향촌(鄕村)[시골 마을]으로 돌아온 후 월송정(月松亭)을 짓고 노봉서원(魯峰書院)을 창립하여 후학을 양성하였다.  오유립은 판관 오세양(吳世暘)의 손자이자 오경인(吳景仁)의 아들이다. 오유립은 오상관(吳尙觀), 오상리(吳尙履), 오상진(吳尙晉), 오상정(吳尙井), 오상항(吳尙恒) 등 5형제를 두었다. 아들 중 오상항이 지금의 부강면 노호리 가루개 마을에 세거하면서 보성오씨가 노호리 지역에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오유립은 학식과 문장이 탁월하였으나 광해군 때 벼슬을 단념하고 향촌으로 돌아왔다. 이후 청원군 현도면[현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의 시목리(枾木里)에 월송정이라는 정자를 세우고 가락을 붙여 시를 읊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또한 오명립(吳名立)·오시립(吳時立) 등과 함께 문의(文義)에 송인수(宋麟壽)를 모실 노봉서원(魯峯書院)을 건립하였고, 후학을 가르치는 등 향풍(鄕風)[시골의 풍속]을 진작시켰다.  1884년(고종 21) 마을 동민들이 힘을 합쳐 마을 입구에 세운 인봉비(印峰碑)가 남아 있다. 인봉비는 15세기 부강에 입향한 보성오씨 파조 오유립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현재 비문은 마모가 심해서 내용을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다. 또한 오유립은 장수하여 장악원정(掌樂院正)에 증직(贈職)[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던 일]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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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면 노호리 오유립인봉비(芙江面 盧湖里 吳裕立印峰碑)

노호1리에위치하고 있는 오유립(吳裕立)의 인봉비(印峰碑)입니다. 이 비석은 보성오씨 오유립의 증손 대곤(大坤,1734~?)과 관련이 있다. 마을중심인 느티나무아래 정자옆에 자리하고 있다. 작은안

blog.daum.net

 

 

부강면 노호리 오유립묘지(芙江面 蘆湖里 吳裕立墓地) (daum.net)

 

부강면 노호리 오유립묘지(芙江面 蘆湖里 吳裕立墓地)

오유립(吳裕立.1575-1658)은 초명이 효립(孝立)이고 자는 백원(百源)이며 호는 남산처사(南山處士)이다. 판관 오세양(吳世暘)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오경인(吳景仁)이다. 어려서 부터 학식과 문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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