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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성면 갈산리 갈산사(琅城面 葛山里 葛山祠) 본문
기암서원은 숙종25년(1699년) 청원군 오창면 기암리에 설봉 강백년(1603-1681)선생을 받들어 제사 지내고 후학을 교화시키기 위하여 지방의 선비가 뜻을 모아 세운 서원이다. 그리고 기암리는 강설봉 선생이 여러번 머무르며 후진을 가르치던 연고지었으므로 이 곳에 서원을 세우게 된것이다.
이 기암서원에 금암 오숙(1602-1675)선생을 추배하게 된것은 1811년(순조11)10월 기암사원 철향때 서원에서 논의하여 이 고장의 여러 서원과 사원에 금암공을 기암사원에 추배할것을 요청하는 통유문을 보낸바 있다. 당시 서원의 설립이나 추배문제는 그 지방의 각 서원의 유림들의 동의를 얻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고 제수물도 관아에 품문을 보내어 보조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금암선생유고집의 향기암서원시다사통유문에 의하면 그 해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으로 인하여 논의가 중지되었다가 15년 후인 1826년 에 재론되어 다시 발문을 보내고 각 서원의 유림들이 금암공의 추배에 대한 당위성을 회답하여 왔으므로 공의에 따라 추배를 결정하고 품문을 관에 올려 제수물을 받아 양선생(설봉공,금암공)의 철향이 그 해부터 봉향되었다.이같이 금암공이 기암서원에 배향하게 된 배경은 품유문이나 통문에서 잘 설명하여 주고 있듯이 첫째 금암공과 설봉공은 중표형제간으로서 어려서 부터 도의상교하고 학문상자하여 금암공의 굳센 지조를 가상히 여기고 재행을 흠모하여 서로 지극히 경애하였다는 점을 들수가 있다.
둘째 금암공은 설봉공 보다는 비록 벼슬은 닞았으나 경학에 대한 학맥을 같이 했으며 또한 금암공은 청렴한 목민관으로서 유학을 장려하고 백성을 공평히 다스려 칭송을 받았으며 평생을 한빈한 생활을 하시어 청백리로 추대되시었고 그리고 효성이 지극하시어 향촌사회에서나 유림들간에 귀감이 되므로 추배되었다. 셋째 금암공의 학덕을 이어받은 자손들 중에서 많은 선비가 배출되었으며 또한 기암서원 창건때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유림간에 보성오씨 문중의 행의와 숭조사상을 인정 받았다는 점을 간과할수가 없다.
즉 기암서원의 창건록을 보면은 본제도유사 오응창 장의 오필창 성조유사 오치명 오준명 학생위 오계창 오윤명 오경명 오진 오일창 오중명 오원명 오택명 오경 등 대거 참여한 것으로도 알수있다. 기암서원 창설된 후 170여년간 춘추 양계절에 봉향하고 유림이 회집하고 학생을 강학하였으나 고종8년(1871)에 훼철되었으나 1984년 8월25일 기암서원을 청원군 낭성면 갈산리에 국고 보조금과 전국의 후손들이 성금을 마련하여 정면3칸 측면1칸 맛배지붕 겹치마 목조기와집으로 내부는 통간 마루방에 중앙에 쌍문과 좌우의 쪽문을 달고 앞마루를 놓고 마당앞에 삼문을 세우고 담장을 두른 기암성원사우 갈산사를 중건하고 노장우가 글을 짓고 조수형이 쓴 기암서원중건사적비를 세우면서 설봉 강백년 선생과 금암 오숙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도내 유림 및 후손들과 국회의원 정종택씨 그리고 각급 기관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준공식을 거행하였다.
이어서 1987년 4월15일 강학당을 신축하여 충효의 도장을 마련하고 매년 음력 초하루 향사를 받들고 있다. 옮겨 모신 이곳은 일찍이 금암공 께서 만세의 세거지로 자리잡은 곳이며 또한 금암공의 유택이 있는 응봉아래에 서원이 회복되었다는 점에서 뜻깊은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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