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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 판관민두호영세불망비(公山城 判官閔斗鎬永世不妄碑) 본문

전국방방곡곡/공주(公州)

공산성 판관민두호영세불망비(公山城 判官閔斗鎬永世不妄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8. 15. 12:32

 

공산성 선정비군내에 자리하고 있는 판관 민두호의 영세불망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판관민후두호영세불망비(判官閔侯斗鎬永世不妄碑)라고 각자 되어 있습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광서임오년(1882년)이며 민두호는 임실현감 수원판감 재령군수를 지내다 1879년 공주판관을 지내고 서흥부사로 이임하였다. [공주시지]

 

[박종인의 땅의 歷史]사람들은 “왜 난리가 일어나지 않을까” 탄식하였다 - 조선일보 (chosun.com)

 

 

[박종인의 땅의 歷史]사람들은 “왜 난리가 일어나지 않을까” 탄식하였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사람들은 왜 난리가 일어나지 않을까 탄식하였다 251. 선정비에 은폐된 구한말 부패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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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두호는 조선 말기의 문신이다. 여흥 민씨 세도가의 한 사람으로, 춘천부유수를 지내면서 백성을 수탈한 탐관오리이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후 민씨 척족들과 함께 물러났다가 후에 의정부찬정에 임명되고 칙임관1등에 서임되었다.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시호는 효헌(孝獻)이다. 현감 치서(致敍)의 아들이며, 일제로부터 자작(子爵) 작위를 받은 탐관오리 민영휘(閔泳徽)의 아버지이다. 1880년(고종 17) 황주목사(黃州牧使)를 지냈으며, 1882년 여주목사(驪州牧使), 1886년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춘천부사(春川府使)가 되었는데, 행정구역 개편으로 춘천부에 유수(留守)를 두게 되자 춘천부사에서 그대로 춘천부유수가 되어 1892년까지 재임하였다. 이때 왕명으로 춘천부의 관아(官衙)인 문소각(聞韶閣)을 확장, 개축하여 국왕의 이궁(離宮)으로 삼았다.

1894년 독판내무부사(督辦內務府事)에 임명되었고, 다시 춘천부유수로 임명되었다. 그해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후 민씨 척족들이 대거 축출되면서 함께 물러났다가 1900년 의정부찬정(議政府贊政)에 임명되고 칙임관1등에 서임되었다. 1902년에는 종1품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올랐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민두호 [閔斗鎬]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