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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 관찰사심의신영세불망비(公山城 觀察使沈宜臣永世不忘碑) 본문
공산성 선정비군에 자리하고 있는 관찰사 심의신의 영세불망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관찰사심공의신영세불망비(觀察使沈公宜臣永世不忘碑)라고 각자 되어 있습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도광18년4월(1838년)이다. 심의신은 1836년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헌종실록" "비변사등록" "일성록"에는 심의신은 부임후 도내에 진휼 및 대흥군봉서 사건해결, 관리등의 포상과 치죄등의 치적이 기록되어있다.심의신은 청백리에 녹선된 인물이다.[공주시지]
음성읍 관찰사심의신영세불망비(陰城邑 觀察使沈宜臣永世不忘碑)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tistory.com)
충청도관찰사는 충청도를 다스리는 입법·사법·행정의 수장으로, 주로 충주목에 거주하며 백성을 다스렸다.충청도 전역을 다스리다 보니 충청도에 속하는 곳에는 그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곳곳에 선정비나 영세 불망비등을 세웠다.심의신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파주 광탄면 방축리에 묘가 있다.자는 舜欽, 본관은 靑松, 상주목사를 지낸 能述의 아들이다. 생부는 판돈녕부사를 지낸 能岳이다. 1810년(순조 10)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829년에 처음으로 주부에 등용되었다.
그해 춘당대전시에 장원급제하여 특별히 발탁되어 통정대부에 승진된 후 중궁전승사관에 임용되고 1836년(헌종 2)에는 충청도관찰사로 나갔다.1838년에는 병조참판을 거쳐 그 해에 사간원 대사간이 되었고 1841년에는 이조참판에 임용되었다.1843년에는 경기도관찰사로 나갔다가 1845년 8월에 병으로 별세하였다. 공은 청백리에 선록되었다.관찰사심공의신영세불망비(觀察使沈公宜臣永世不忘碑)라고 적혀있습니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헌종 2년 2월 12일 을축 1836년 ...沈宜臣書。 王若曰, 養人材而歷試內外, 蹔煩卿有造乎一方, 按地勢則跨據西南, 將使予無憂者三載, 刺史榮矣, 民望蔚然。 眷彼百濟舊邦, 最是八路重鎭, 湖·海·嶺·嶠·畿甸之相錯繡,...忠淸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巡察使公州牧使。 卿其殫乃心膂, 控其咽喉, 嚴僕 射之雪山重輕, 須使豪猾之破膽, 齊相國之獄市淸淨, 必先疾痛之察眉, 隨其事而耳聽口酬, 是爲敏贍通鍊之治,...
忠淸監司 沈宜臣이 청한 대로 還軍餉 留庫條 米 1천섬 등을 加分하게 할 것을 청하는 備邊司의 啓 |
헌종 2년 1836년 06월03일(음) |
忠淸監司 沈宜臣이 청한 대로 賑資穀 折米 3천섬을 營賑穀 등으로 區劃할 것을 청하는 備邊司의 啓 |
헌종 2년 1836년 12월05일(음)
◯ 비변사의 계사에
“충청감사 심의신(沈宜臣)의 장계를 보니 재해를 당한 고을의 민정(民情)은 진휼(賑恤)하여 구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갖추 아뢰고, 이어 진휼 밑천의 절미(折米)하여 3천 석을, 도내(道內)의 영진곡(營賑穀)에서 절미하여 1천 5백 석, 균청(均廳)의 곡식에서 절미하여 3천 석, 원진휼곡에서 절미하여 5백 석을 특별히 획하하고, 환군향(還軍餉)은 그 많고 적음을 헤아려 이전(移轉)하여 많은 데서 덜어 모자란 데에 보태주도록 아울러 묘당에서 품지하여 분부하게 하기를 청하였습니다. 금년 본도 백성의 형세는 참으로 진휼하는 일이 없어서는 안 되겠는데, 청한 바의 곡물도 또한 많지 않으니 절미하여 3천 석을 장계에서 청한 대로 분배(分排)를 획급하여 좋은 쪽으로 경영하게 하며, 환군향을 알맞게 헤아려 많은 데서 덜어서 모자란 데에 보태는 것도 진휼을 의논할 때 이미 시행한 예(例)가 있으니 아울러 허시하되, 진휼하는 정사(政事)는 매우 중한만큼 하나라도 혹 불찰이 있으면 비단 국계(國計 : 국가예산)에 지장이 있을 뿐 아니라 전도(全道) 백성의 잘되고 못됨이 오로지 여기에 달렸으니, 우선 굶주린 사람을 가려내는 일부터 각별하게 주의하도록 동칙(蕫飭)하여 털 하나라도 누락되거나 함부로 하여 허(虛)와 실(實)이 서로 섞이는 폐단이 없게 하고, 일이 지난 뒤에는 의당 별양(別樣)으로 염찰하는 일이 있을 터이니 만일 아전이 간계를 부려 백성에게 은혜가 끝까지 미치지 못하였다면 적발되는 대로 신칙하지 못한 도신(道臣)까지 아울러 별도로 징치하고 논감하겠다는 취지로 미리 거듭 밝히고 알리며, 환향(還餉)을 이전할 때에 농간을 부릴 우려가 없으리라고 보장하기 어려우니 이 역시 도신더러 마음을 더 써서 찰칙(察飭)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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