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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문화재단지 김광욱선정비(淸風文化財團地 金光煜善政碑) 본문

울고넘는박달재/제천시(堤川市)

청풍문화재단지 김광욱선정비(淸風文化財團地 金光煜善政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12. 7. 06:56

 

 

김광욱은 조선 후기 청풍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회이(晦而), 호는 죽소(竹所). 시호는 문정(文貞). 증조할아버지는 김생해(金生海)이고, 할아버지는 김원효(金元孝)이며, 아버지는 형조 참판 김상준(金尙寯)이다. 어머니는 이천우(李天祐)의 딸이다. 김광욱(金光煜)[1580~1656]은 1606년(선조 39) 진사시에 합격하고, 증광 문과에 병과로 합격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었다. 이후 예문관 검열, 대교, 예문관 봉교, 병조 좌랑, 사간원 정언, 부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1611년(광해군 3) 다시 사간원 정언이 되어 이언적(李彦迪)과 이황(李滉)의 문묘 종사(文廟從祀)를 반대하는 정인홍(鄭仁弘)을 탄핵하였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에 연루되어 국문을 받았으나 곧 풀려났다. 1617년(광해군 7) 폐모 논의를 위한 자리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로 삭직(削職)되자 고양(高陽)에 은거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복관되어 고원 군수(高原郡守)·홍주 목사(洪州牧使) 등을 지냈다. 청풍 군수로 재직할 때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가 세워졌다. 1633년(인조 11) 양서관향사(兩西管餉士), 1641년(인조 19)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뒤 병조 참의가 되었으며, 1644년(인조 22) 승정원 부승지 겸 세자빈객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승정원 도승지, 병조 참판, 호조 참판, 경기 감사를 역임하였다. 효종 즉위 후 개성 유수를 지냈고, 1654년 동지사(冬至使)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형조 판서, 의정부 우참찬, 의정부 좌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작품으로 『죽소집(竹所集)』이 있고, 『장릉지장(長陵誌狀)』을 찬하였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