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청풍문화재단지 수리조합주석균공적불망비(淸風文化財團地 水利組合朱碩均功績不忘碑) 본문

울고넘는박달재/제천시(堤川市)

청풍문화재단지 수리조합주석균공적불망비(淸風文化財團地 水利組合朱碩均功績不忘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12. 6. 06:33

 

수리조합 회장을 지낸 주석균의 불망비입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단기 4281년(1948년)입니다.

 

주석균은 해방 이후 농림부차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관료.1903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신안(新安)이며, 호는 남정(南庭), 아버지는 형규(炯奎)이다. 1919년 평안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으며, 1923년 4월 조선총독부 행정강습소에 입소해 1924년 3월 수료했다. 졸업 후 조선총독부 내무국 지방과 속(屬 )에 임명되어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1933년부터 1945년 해방될 때까지 평안북도 위원군수와 선천군수를 역임했다. 특히, 위원군수로 재직할 때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을 적극 실시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부터 조선수리조합연합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1948년부터 1950년까지 농림부차관을 역임했다. 1950년 농업문제연구회를 창립, 1975년까지 회장으로 있으면서 우리나라 농촌문제에 관해 연구했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의 한국협회 회장, 한국토지개량조합연합회 회장,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경제과학심의회의 위원, 전국경제인연합회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농민을 위하여』(正宇社, 1979)가 있고, 논문으로는 「수리조합제도개선에 대한 연구」·「토지제도의 개혁과 토지개량사업의 진로」 등이 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주석균(朱碩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