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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문화재단지 팔영루비석(淸風文化財團地 八詠樓碑石) 본문

울고넘는박달재/제천시(堤川市)

청풍문화재단지 팔영루비석(淸風文化財團地 八詠樓碑石)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12. 8. 06:32

 

 

팔영루의 앞에 있는 사적비. 이 비(95×37.5×16㎝)는 1983년 청풍문화재단지로 이전하였다. 팔영루(八詠樓)읍리 286번지에 소재했었다. 읍하리 서쪽에 있는 정자. 조선 숙종(肅宗) 28년(1702)에 청풍 부사 이기홍이 창건하고, 고종(高宗) 7년(1870)에 청풍 부사 이직현이 고침. 그 후 민치상이 여덟 시를 짓고 ‘팔영루(八詠樓)’라는 현판을 써서 붙임1976년 12월 23일 지방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 1983년 청풍문화재단지로 이건하였다. 

 

 

 

이직현은 개항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화좌(華佐). 아은(啞隱) 이정악(李挺岳)의 후손이다.  이직현(李稷鉉)은 헌종 때에 음사로 관직에 들어가 여러 차례 승진하여 공조 참판에 이르렀다. 여러 곳의 지방관을 역임하면서 많은 업적을 쌓았다. 부여 영강정(映江亭)을 건립하였고, 1870년(고종 7) 청풍 부사로 재직할 때에는 제천 청풍 한벽루, 제천 금남루, 청풍 팔영루를 중수하였다. 청풍문화재단지에 중수비가 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이기홍은 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기주(箕疇), 자는 여구(汝九), 호는 직재(直齋). 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 이숙(李塾)이고, 어머니는 군수 송현(宋鉉)의 딸이다. 반남 박씨 박세훈의 딸과 혼인하였다. 첫째 아들은 현감을 지낸 이시현(李蓍顯)이고, 둘째 아들은 이시선(李蓍先), 셋째 아들은 이시정(李蓍定), 넷째 아들은 이시성(李蓍聖)이다. 딸은 두 명을 두었다.  이기홍(李箕洪)[1641~1708)은 학명이 높았으나,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1687년(숙종 13) 47세 때 학행으로 효릉 참봉(孝陵參奉)에 임용되었다. 1689년(숙종 15) 사포서 별검(司圃署別檢)에 전직되었으나 사양하였다. 같은해 스승 송시열이 유배되자 동문과 함께 변론하다가 회령(會寧)에 유배되었다가 1693년(숙종 19) 사면되었다. 이후 1694년(숙종 20) 세자시강원 자의(世子侍講院諮議)로 복직되었고, 1695년(숙종 21) 종부시 주부(宗簿寺主簿)로 승직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696년 서연관(書筵官)·사헌부 지평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1697년(숙종 23) 통천 현감에 부임하였고, 1700년(숙종 26) 청풍 부사로 부임하였는데, 재임시인 1702년 청풍 팔영루를 중수하였다. 1702년 연풍(延豊)에 내려가 문산(文山)에 수락정(壽樂亭)을 세우고, 황강에 살던 권상하(權尙夏)와 장암에 살던 정호(鄭湖) 등과 교유하며 지냈다.  이지렴(李之濂)·송시열의 문인이며, 저술로 『자성편(自省編)』, 『위학적방(爲學績方)』, 『직재집(直齋集)』 [10권] 등이 있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율릉리에 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엄정면 율릉리에 위치하고 있는 이기홍의 묘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