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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읍 비중리 나헌용기적비(內秀邑 飛中里 羅獻容紀蹟碑) 본문

통합청주시/청원구(淸原區)

내수읍 비중리 나헌용기적비(內秀邑 飛中里 羅獻容紀蹟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3. 7. 3. 14:32

 

나헌용은 본관이 안정으로 초휘는 시용(始容), 자는 희도(羲圖), 호는 혜전(蕙田)이다. 그는 1851년 신해 2월 14일 상당현 비홍리 87번지 에서 태어나서 승훈랑을 역임한 후 청원군 부강 동촌으로 낙향하여 그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안정나씨의 시조는 나천서(羅天瑞)로, 1370년(공민왕 19) 이성계(李 成桂)가 요동을 정벌하고 귀환할 때 만오천 여 군사를 수백 석의 양곡을 조달하여 무사히 생환시킨 공으로 안정백(安定伯)에 봉해졌던 인물이 다. 그 뒤 나천서의 6세손이자 나유선(羅裕善)의 아들인 나사종(羅嗣 宗, 1440-1491)이 이름이 났다. 효성이 지극하고 학행과 무술이 뛰어났 으며, 특히 궁마에 능하고 의협심이 강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고 한다. 충청도관찰사 성준(成俊)의 천거로 발탁되어 1486년(성종 17) 경흥부사(慶興府使)가 되었다. 당시 변경(邊境)을 자주 침탈하던 여진족들을 막기 위해 군사를 조련하고 조산보(造山堡)를 개축하였다. 1691년(성종 22) 1월 여진족이 조산보에 침입하자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혈전을 벌였으나 전사하고 말았다. 조정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기 위해 병조판서에 추증하고 ‘충정(忠貞)’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또한 문과에 급제하여 세자시강원 설서를 지낸 나만기(羅萬紀)가 있다. 나만엽 (羅萬葉, 1611~1679)은 남원부사, 사헌부 장령, 여주목사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혜전의 부친은 나채익(羅采益)이며, 부인은 은진송씨 희수(熙脩)의 딸과 영천이씨 우석(禹錫)의 딸이다. 혜전은 부친과 영천이씨의 사이에 서 1851년(철종 신해) 2월 14일 상당현 비홍리(飛鴻里)에서 태어났다.

 

 

그해 6월에 부친께서 28세의 젊은 청춘으로 세상을 여의자, 모친은 엄하고 인자하게 혜전을 양육하였다. 나이가 차지 않았을 때에 이미 소학을 이해하였고, 8세에 소미통감을 한번 보고 강기(强記)하였고, 9세, 10세에는 사서와 삼경을 통하였다. 12세에 관아에서 주최하는 백일장면시(白日場 面試)에서 장원으로 뽑힌 바 있었다. 15세에 관례를 하고 전주이씨 남붕(南鵬)의 딸에게 장가들었다. 경오년(1870) 11월에 모친의 상을 당하여 애훼(哀毁)를 다하였고, 을해년 (1875)에는 이부인의 상을 당하여1) 인동장씨 원석(元錫)의 딸에게 장가를 들었다. 신묘년(1891) 12월 사마시에 2등으로 합격하였고, 무술년 (1898) 6월 처음으로 장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이듬해 6품계가 올라 승훈랑(承訓郞)에 발탁되었다. 을축년(1925) 5월 26일 상당(上黨) 부강(芙江) 동촌(東村)의 집에서 타계하니, 향년 75세였다. 묘소는 오창면(梧倉面) 백자동(柏子洞) 자좌(子坐)의 언덕에 있다. 혜전은 평생 경사와 백가(百家)의 서적 오천 여권을 암송하고 탐독 하였다. 그가 저술한 시문은 <과두미집(蝌蚪尾集)>, <초미동집(焦尾桐集)>, <목가산집(木假山集)>, <교교재집(嘐嘐齋集)>, <조선전사(朝鮮 戰史)>, <상차반잡저(常茶飯雜著)> 등으로 엮어졌으니, 이것만으로도 그의 역량을 가늠하기에 충분하다. 중년에 서울에 있으면서 교유했던 인물들은 모두 한 때의 저명한 현사들이었다. 혜전은 기울어져가는 국난 속에서도 의롭게 처신하여 세상 일이 날마다 그릇되어 감을 알고 탄식하며 세상에 널리 쓰이고자 하지 않았다. 말년에 청주로 낙향하여 일생을 마쳤으니 식자들은 혜전의 학식과 덕망이 널리 쓰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였다. 혜전은 2남 2녀를 두었다. 장남 상규(相圭)는 협판(協辦) 이원경(李 源競)의 딸에게 장가들어 1남 3녀를 두었으니, 아들은 세찬(世燦)이며, 딸은 신병휴(申秉休), 정희수(鄭喜秀), 권락원(權洛源)에게 시집갔다. 차남 상면(相冕)은 이우교(李雨敎)의 딸에게 장가들었으나 후사가 없다. 딸은 신명우(申命雨), 한유동(韓維東)에게 출가하였다. 혜전의 묘소는 오창면 백자동에 있고, 초배 전주이씨는 연기군 동면 갈산리에 있으며, 계배 인동장씨는 혜전과 합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