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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낭성면 관정리 백석정(琅城面 官井里 白石亭) 본문
청주시 낭성면 관정리 지천가에 고령신씨의 정자인 백석정이 있습니다. 가까운 곳이니 바람도 쐴겸 시간이 나면 자주 들리는 곳입니다.이번에도 괴산 화양구곡을 다녀오다 들려보았습니다.
언제나 같은자리 같은 정자이지만 찾을 때 마다 느낌이 새롭습니다.
백석정은 조선 숙종3(1677년)에 東部主簿를 지낸 白石亭 신교(申灚 ; 1641∼1703년)가 세운 고령신씨의 정자이다. 현재의 정자는 1927년 후손들이 중건하였습니다. 관정리 마을 앞 도로를 따라 마을 끝자락을 돌아가면 마을 뒷산 중턱 절벽에 바위를 의지하여 자리하고 있다. 지형상 뒤편에 산을 두고 북향하여 바위에 입지하였으며, 백석정 아래에 넓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건물로의 진입은 절벽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약 10m 정도 들어가면 일각대문이 놓이고 그 안에 백석정이 자리한다. 신교(申灚)는 1677년 낭성천(한강의 상류)의 芷潭 邊 절벽에 매달린 높은 바위 위에 백석정을 창건하여 自號로 白石亭이라 명명하고, 그곳에서 당대의 嶺南과 畿湖지방의 유명한 文士들과 문장과 詩歌를 짓고 교류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백석정 정자는 1927년에 중건하고 1987년에 보수한 것으로 정면 2칸 측면 1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내부는 통간에 쪽마루를 깔고 통난간을 둘렀다.
백석정(白石亭)
海之東有石 : 해동에 바위 하나 있어
石白搆吾亭 : 하얀 바위 위에 내 정자를 지었네.
臨水飜彩桷 : 물가에 채색 서까래 일렁이고
依天闢畵欞 : 하늘을 향하여 화사한 추녀 열렸네.
長睨喬藤碧 : 높고 푸른 등나무 한참을 바라보고
自愛谷蘭靑 : 계곡의 푸른 난초 절로 사랑스러워라
與世相違別 : 세상과 더불어 서로 어긋나 헤어졌다가
今歸伴岳靈 : 이제야 돌아와 산신령과 짝하네.
백석정 기문〔白石亭記〕
정자의 이름을 백석(白石)이라 한 것은 바위가 희기 때문이다. 바위는 본래 천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옛날에도 희었고 지금도 그러하지만, 백석이란 명칭은 정자가 세워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정자가 세워지기 전에는 덩그러니 솟은 평평한 바위가 높은 손바닥 모양을 하고 있어 벌어진 꼭대기가 발을 붙일 만하였는데, 이는 조물주가 붙잡아 두고서 주인을 기다린 것이다. 지담(芝潭) 신공(申公)이 소요하다 우연히 이곳에 이르러 배회하고 음영하다가 말하기를, “이곳에 정자를 지을 만하다.” 하였는데, 지담공의 아들 주부공(主簿公)이 이어서 그 뜻을 이루고 마침내 백석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에 온 나라 사람들이 혹 직접 가 보거나 눈으로 본 적이 없는 자들조차 청주에 백석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사물이 주인을 만나고 만나지 못함이 이와 같구나. 기억하건대, 예전에 내가 정자 아래로 지나가다가 그를 바라보니 마치 매가 제비집에 깃들어 있는 것처럼 위태로우면서도 추락하지 않는 것이 묻지 않아도 신씨의 정자임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덩굴을 부여잡고 올라가 난간에 기대어 강을 굽어보고 덕분에 회포를 한 번 풀었던 것이 어느새 30년이나 되었는데 일찍이 마음속에 왕래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좋은 벗과의 이별에 비의할 만하였다. 청주에서 온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먼저 그 정자가 아무 탈이 없는지를 물었고, 그렇다고 대답하면 마음이 곧 기뻤다. 만일 비바람에 퇴화되었다거나 목동이나 나무꾼에게 훼손을 당해 좀 퇴락된 면이 없지 않다고 말하면, 문득 그 때문에 언짢았다.
이제 종질손인 진사 광보(光甫)가 신씨 자제들과 잘 알아 종유하였는데 나에게 말해주기를,
“주부공의 손자 아무개가 개연히 탄식하며 ‘금년 병진년(1736, 영조12)은 바로 정자를 창건한 지 한 갑자(甲子)가 되는 해인데 옛 자취가 따라서 인멸되어 가니 우리가 어찌 감히 이 일을 일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마음과 힘을 다하여 동량과 지붕을 세우고 벽과 단청을 발라 일신해서 유감이 없게 하였습니다.”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신씨는 번성한 집안으로 대대로 걸출한 인물이 나서 고을의 여망이 되어 왔는데 이 정자가 자손에게 전해져 자못 바위와 더불어 나란히 서서 훼손되지 않을 것이니, 아무개 같은 자는 질서가 있고 법도가 있어서 오래된 가문의 남은 전통이 있구나.” 하였더니,
그가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그가 문학에 잘 종사하여 위로 선대의 사업을 잘 계승하기를 생각하였습니다.”
하였다.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렇다. 그렇다면 정자를 거듭 수리한 것은 단지 정자만이 아니다. 뜻에 보존한 바가 있으면 일을 맡는 바가 있는 것이요, 일을 맡는 바가 있으면 반드시 사물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정자를 수리하는 것은 바로 조상이 남긴 사업을 닦는 것이다. 신씨의 덕망 있는 후손들이 또 더욱 번창하리라는 것을 점칠 수 있으니 장차 저 바위를 식양(息壤)과 같은 증표로 삼으리라.
[출처] 성호전집(星湖全集) 제53권 기(記) 이익(李瀷 1681년-1763년)
-성호 이익은 이 곳 출신인 목사 고령인 신필청(1647~1710)의 사위로서 이 곳 낭성을 방문하여 백석정을 둘러보고 백석정기를 남겼다. 또한 장인인 신필청의 묘갈문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백석정기의 내용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흰돌위에 정자를 지으시고 그 이름을 백석정이라 하시니 이 정자는 나의 종숙께서 손수 지으신것이다. 종숙께서는 젊은시절 기이한 기품을 지으셨고 만리심이 있으셨는데 갑자기 세상살이에 싫증이 나시어 사방을 둘러 보시니 마침 소유처럼 경치 좋은곳이 있는지라 대체로 질타당할것을 무릅쓰고 그 풍광에 빠지시어 휘파람 불며 오히려 세찬 바람을 아랑곳 않고 큰 물결 헤쳐 낚시를 장만하고 찾은곳에 나가셨으니 그 얻은곳은 묵정 왼쪽에 백석이었다. 그 돌은 개울에 붙어 엎드려 너덧길이나 솟아 일어서 있고 그 곳에서 북으로 삐친 모래여울은 삼백무나 가까이 되고 남으로 보이는 석봉은 멀리 이리나 되어 비록 환한 골속 옆이지만 먼곳까지 두루 볼만하고 뒤에는 태고의 소나무들이 어우러져 조금 서늘하며 맑은 그늘이 가득한 곳이다.
공께서는 드디어 산을 뚫어 좁은 길을 내고 돌위에 시렁을 걸어 정자를 지었는데 그 왼편을 얽어 방한칸을 꾸며 넣으니 달이 바뀌기 전에 금방 날아갈 듯 하고 용머리에 모인 서가래며 사자등에 엎힌 난간등의 단청채색에 햇빛이 빛나니 완연히 한 폭 그림속에 풍경같다.우러러 보면 높은봉에 이어진 봉우리 그림자가 첵체와 자리사이에 숨었다 나타났다 가리졌다 이지러졌다 하고 구비보면 맑게 흐르는 세찬 여울이 창문아래 구불구불 얽히어 연달아 흐르는 지라 마치 물이라도 뿌려 싸우는 듯 지극히 시원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쏟아지는 빗속에 우연히 우뚝 서있는 듯 함을 생각하게 한다.
그 어른께서는 어느 날 손님을 이끌고 이곳에 오르시면 바람이 불어도 돌아가시지 않고 눈이 내려도 돌아가시지 않으시며 흥이 다 풀리지 않아도 돌아가시지 않으시며 언제나 해가 질무렵이면 붉은 난간에 기대 앉아 동산에 거울같은 달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이윽고 달이 돋아 채각의 그림자가 물위에 거꾸로 비추고 이에 놀란 물고기가 뛰어 물결을 일으키면 문득 술을 부르고 배를 저어서 하늘의 밝은 달을 쫓아 달빛 흐르는 물결을 거슬리며 혼연히 즐기시느러 집에 돌아 갈것을 잊으신 듯 하였다.
나에게 이런 뜻을 적어주기를 바라시기에 나는 이르노니 "흰것이 채색을 받으면 바탕이요 돌보다 굳은것은 지조라"나의 채색을 받은 흰바탕으로서 나의 돌 같은 지조를 갈고 닦아서 애당초 하던 일을 도리켜 명백함을 숭상하고 천부의 근본을 지키고자 돌을 베개하고 저 흐르는 물로 양치질 하며 은총을 놀랜듯이 사양하고 아무 근심없이 숨어지내니 어찌 정자를 이름한 뜻과 터전의 이름이 꼭 들어맞지 않으리오 비록 그러나 산수는 어진 성품과 총명한 지혜가 없는 자는 줄거울것이 없으며 강산은 호걸을 기르되 그 시대와 만나고 못만남은 또한 운수이거늘 어찌 백석이 황석과 같이 않음을 알것이요" 하니 그 어른께서 이르시되 "자네의 말이 어찌 지조로 말 잘하여 이르는가 내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네" 하시고 청하여 정자벽에 써서 걸으시고 스스로 살피리 라고 하시었다. 숙종삼년정사춘 종질 필청 기.
- 백석정에 기대여 -
비 온 후의 탁류지만
하얀 돌 위에 지어져 이름도 백석정(白石亭)인 정자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더위를 잊게 합니다.
강가 절벽 좁은 터 위에 멋지게 자리 잡은 백석정
내 좋은 사람이랑 농주(農酒) 한잔 나누며
세월을 잊고 싶은 그림입니다.
더운 날 먼 길 오셨다고
강가에서 부는 바람마저도
정자 한 켠에 자리하고 앉았습니다.
아련한 그리움이 피어납니다.
[백석정을 다녀와 제가 끄적거려봤습니다]
5량가 소로수장집으로 내부는 통칸에 쪽마루를 깔고 통난간을 돌렸다. 전체적으로 구조부재가 세장하고 간결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배면 가운데 기둥은 치목하지 않은 자연목을 세워 특이합니다.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백석정을 바라보며 -
먼곳에서 오는 친구 대접하려
지천가에 낚싯대 드리우니
봄바람에 살랑이며 물결만이 춤을 추고
고기는 모습조차 보이질 않네
고기 없으면 어떠리
설 익은 농주위에 두견화나 띄워놓고
어스름 달밤에 쪽배 띄우고
거문고 소리에 나 그대와 함께 취하고 싶어라.
[백석정을 다녀와 끄적거려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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