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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한면 교암리 송기억묘지(水汗面 敎岩里 宋基億墓地)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수한면 교암리 송기억묘지(水汗面 敎岩里 宋基億墓地)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4. 2. 5. 18:40

종사랑을 지낸 송기억에 대한 자료를 찾던중 송강석이란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송기억은 세한재 송시도의 양자로 후사가 없이 세상을 뜨자 그 후사를 이은 인물이 송강석이다.

 

송강석(宋康錫) 1663(현종 4)~1721(경종 1) │ 조선 후기의 학자로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진숙(晉叔), 호는 운곡(雲谷)이다. 할아버지는 세한재(歲寒齋) 송시도(宋時燾), 아버지는 종사랑 송기억(宋基億), 어머니는 진주 강씨(晉州姜氏)로 통덕랑(通德郞) 강만구(姜萬久)의 딸이다. 생부는 도원도찰방(桃源道察訪) 송기덕(宋基德), 생모는 창녕 성씨(昌寧成氏)로 성진병(成震丙)의 딸이다. 송기덕과 송기억은 모두 송갑조(宋甲祚)의 5형제 중 둘째인 송시묵(宋時默)의 아들로 각각 후사가 없던 작은아버지 송시걸(송갑조의 5남)과 송시도(송갑조의 4 남)의 뒤를 이었다. 이후 송시도의 양자로 갔던 송기억이 후사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송기덕의 둘째 아들인 송강석이 그 후사를 이었다. 종조부인 우암 송시열에게 수학하였다. 우암 송시열이 매우 총애하여 『역학계몽(易學啓蒙)』을 주며 학업을 독려하였다 고 한다. 1684년(숙종 10) 향시(鄕試)에 장원하고 1689년 할아버지를 따라 우암 송시열의 배소(配所)인 제주도에 갔다가 할아버지 병환으로 공주로 돌아와 할아버지 가 세상을 떠나자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보은 구병산 아래 운학곡(雲鶴谷)에 은거 하였다. 우암의 수제자인 권상하(權尙夏)가 중하게 여겨 그 사는 곳을 운곡(雲谷) 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1717년 권상하의 추천으로 영소전(永昭殿) 참봉에 제수 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오직 후진양성에 힘썼다. 말년에 사부(師傅), 자의(諮議)에 추천되었다. 1721년 59세로 나이로 세상을 떠나 보은의 남쪽 가림(佳林)에 장사지냈다. 산앙사(山仰祠)에 우암 송시열, 한수재 권상하와 함께 배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운곡집(雲谷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