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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한면 소계리 박상호묘비(水汗面 紹溪里 朴商晧墓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수한면 소계리 박상호묘비(水汗面 紹溪里 朴商晧墓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4. 2. 2. 12:02

소계리는 본래 보은군 수한면 지역으로서 소의 목이 되므로 소메기, 또는 우항(牛項)이라 하였는데, 1941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말관리(末串里)와 묘북리(묘北里)를 병합하여 소계리라 하였다.

 

박상호(朴商皓)는  1631(인조 9)~1684(숙종 10) │ 조선 후기의 학자로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공익(公翼)이다. 증조는 참판에 증직된 박치경(朴致敬), 할아버지는 찰방 박정진(朴 廷璡), 아버지는 신창현감(申昌縣監) 박찬선(朴纘先), 어머니는 남양 홍씨로 홍시정(洪時挺)의 딸이다. 부인은 광주 김씨(光州金氏)로 김자건(金自鍵)의 딸이며, 우암 송시열의 문인이다. 할아버지 박정진이 구수복의 사위로 보은의 처가에 살고 있던 박현능(朴賢能)의 양자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우암 송시열에게 배웠으며, 효행이 지극하고 형제간 우애가 뛰어났다고 한다. 벼슬하기를 단념하고 학문에 정진하였으며 문인화가로 유명한 고종사촌 정경흠(鄭慶欽)과 교유하였다. 그의 고모 상주박씨가 정이중(鄭以重)의 부인인데 후사가 없어 보은에 거주하고 있던 정경흠을 양자로 들였다. 뒤에 장사랑(將仕郞)이 되었으며 대사헌(大司憲)에 추증되었다. 우암 송시열의 묘표(墓表)가 있으며 묘소는 수한면 소계리에 있다

 

신도비는 소계리 뒷산에 자리하고 있으며 박상호의 신도비위로는 아버지인 신창현감을 지낸 박찬선의 비가 있으며 그 위에는 찰방을 지낸 할아버지 박정진의 비석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길 가에서도 눈에 띄이며 찾아가기는 어렵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