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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월동 엄찬선정비(丹月洞 嚴讚善政碑) 본문
목사엄후찬청덕휼민선정비(牧使嚴侯纘淸德恤民善政碑)라고 적혀있으며 비석의 건립연도는 갑술(甲戌)년(1694년) 8월이다.익살스런 모양을 한 귀부가 받침돌을 하고 있으며 비갓에는 조금은 투박하지만 두마리의 용을 새겨놓았습니다.
승정원일기 352책 (탈초본 18책) 숙종 19년 4월 13일 병술 10/13 기사 1693년 康熙(淸/聖祖) 32년
善治守令 抄錄別單의 명단○ 善治守令抄錄別單,
前牧使沈益相, 南原縣監沈極, 前郡守呂益齊, 海州牧使柳以井, 全州判官鄭有徵, 前府使鄭悏, 豐德府使南尙薰[南尙熏], 司僕僉正朴重圭, 前府使趙持恒, 恩津縣監朴重徽, 前縣監具文洙, 刑曹正郞申瓁, 善山府使鄭是先, 尙州牧使李恒, 前都事南彦昌, 漢城庶尹鄭重昌, 丹陽郡守李渙[李澳], 杆城郡守李寅熽, 定平府使李璜珪, 忠州牧使嚴纘, 永川郡守張瑱。以上吏曹謄錄
엄찬은 1693년(숙종 19) 충주목사겸충주진관병마첨절제사가 되었다. 같은 해 전임 충주목사 이국헌(李國憲)이 갑자기 죽음을 당하자, 이국헌의 아들이 소장(訴狀)을 올려서 의심스러운 여섯 사람을 가두었다. 그런데 이국헌의 후임으로 온 충주목사 엄찬까지도 꾸짖고 욕보이자, 엄찬이 이국헌의 아들을 곤장으로 때리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엄찬은 충주목사에서 체임되고, 이 일로 경연(經筵)에서 논의가 있었는데 이현일(李玄逸)이 엄찬의 치적을 두둔하여 주었으므로 그대로 유임되었다. 1702년(숙종 28) 청주목사를 역임하였다.
엄찬은 청주목사시절 사간원에 의해 탄핵을 받습니다.
1702년 1월 18일 사간원(司諫院)에서 탄핵하기를 "청주 목사(淸州 牧使) 엄찬(嚴纘)은 바야흐로 국상(國喪)인 국휼(國恤) 초(初)를 당하였는데도 편안하게 관아의 객사(客舍)에서 잠을 자고 곡을 할 자리에 몸소 가지 못하고 그 쪽을 향하여 애곡(哀哭)하는 망곡(望哭)할 때에 많이 빠졌으며, 그 고을 안에는 도살(屠殺)을 전처럼 낭자하게 하고, 도내(道內)의 과거에 응시하는 유생들이 본주(本州)에 이르러서 빽빽하게 많이 모여 술과 음악을 함께 벌이고 있으니 청컨대 관원의 명부인 사판(仕板)에서 삭제하소서."하니 숙종이 그대로 따랐다.
목사 엄찬의 비석은 소이면 비석거리에 이국헌의 비석과 나란히 비석1기가 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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