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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면 김종오장군상(芙江面 金鍾五將軍像) 본문

전국방방곡곡/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김종오장군상(芙江面 金鍾五將軍像)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4. 30. 11:36

 

 

 

 

 

청원군 부용 출생인 김종오 대장은 6.25 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접전을 벌여 대승을 거두었으며 중부전선에서 한국군이 당하고 있던 수세 일변도를 뒤집어 놓은 백마고지 전투를 승리로 이끈 6사단장으로 한국 전쟁사에 올라있는 인물이다.

당시 백마고지전투는 10일 동안 12번의 공방 전 끝에 중공군 1개군단 1만여명 , 9사단 3,600명의 사상자가 있던 6.25 최고의 전투였으며, 김종오 대장은 백마고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중요인물로 백마고지 전투의 신화가 되었다. 육군 참모총장을 역임하고, 부강초등학교 증축, 외천초등학교, 부강중학교를 건립하는 등 교육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셨으며 부용면의 자랑스런 역사적 인물로 불리우고 있다.

또 김종오 장군의 제6사단은 압록강에 최초로 도착한 부대였다는 사실과

그의 예하 연대가 압록강물을 수통에 담아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낸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일화이다

 

 

김종오(金鍾五)에 대하여
1921년∼1966년. 군인. 충청북도 청원 출신.
일본 쥬오대학(中央大學) 재학중인 1944년에 학도병에 입대, 소위로 임관되었으나, 일본의 항복으로 귀국하였다. 귀국 후 좌익세력이 결성한 ‘학병동맹’에 대항하여 만들어진 ‘학병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군사영어학교에 입교, 1946년 1월 육군소위로 임관되었다.
임관 후 제3연대 창설에 참여하였고, 계속 승진하여 1949년에 대령이 되었다. 제1연대장에 재직중이던 1949년 5월 포천 북방 사직리에서 북한공산군 2개 중대 병력을 섬멸함으로써, 6·25남침 이전 북한공산군과의 접전에서 최대 전과를 올렸다.
북한공산군의 6·25남침 당시에는 제6사단장으로서 춘천·홍천방면으로 공격해오는 북한공산군의 진격을 5일간이나 지연시킴으로써, 공산군의 진공계획에 큰 차질을 가져오게 하였다.
충청북도 음성에서는 북한공산군 15사단 48연대를 기습하여 사살 1천명, 포로 97명과 수많은 장비를 노획하는 등 개전 이래 최대의 전과를 올렸으며, 이 전공으로 7월 육군준장으로 승진했다. 같은해 9월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작전에 나선 김종오사단은 10월 26일 초산을 점령, 한만국경에 최초로 태극기를 꽂았다.
북진작전중 부상으로 제9사단장으로 전보된 다음, 육군본부일반참모비서장·제1군단참모장·제3사단장·육군본부인사국장 등 요직을 역임하였다.
1952년 휴전회담에서 군사분계선획정문제를 두고 막바지 줄다리기를 하고 있을 때 전방의 제9사단장으로 임명되어, 중공군 정예사단들과 백마고지를 두고 10일 동안 24번이나 계속된 뺏고 빼앗기는 혈전을 지휘하였다. 이 전투 끝에 중공군을 완패시킴으로써 휴전회담에도 큰 정치적 영향을 미치게 하였다.
그뒤 육군사관학교교장·제1군단장·제5군단장·교육총본부총장·육군참모차장·국방연구원장·제1군사령관·국방부합동참모본부총장 등을 지냈다.
5월혁명 직후인 1961년 6월에는 제15대육군참모총장에 취임하고, 1962년에 육군대장이 되었다.
1963년 6월 임기만료로 육군참모총장직을 사임하고, 겸임하고 있던 합동참모회의 의장으로 있다가 1965년 지병으로 예비역에 편입되어 1966년에 사망,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