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3 | 4 | 5 | 6 | 7 |
| 8 | 9 | 10 | 11 | 12 | 13 | 14 |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 29 | 30 | 31 |
- 충북나그네
- 외사리 당간지주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효자문
- 국립청주박물관
- 화양구곡
- 한독의약박물관
- 보성오씨
- 밀양박씨
- 청주박물관
- 오블완
- 충주박물관
- 효자각
- 단지주혈
- 공산성 선정비
- 충북의 문화재
- 각연사
- 부여박물관
- 곡산연씨
- 부도
- 청풍문화재단지
- 문의문화재단지
- 경주김씨
- 티스토리챌린지
- 선돌
- 사인암
- 상당산성
- 법주사
- 문경새재
- 공주박물관
- Today
- Total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감곡면 상평리 안동김씨세거지지비(甘谷面 桑坪里 安東金氏世居之地碑) 본문

모정약수터라는 비석이 동네입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감곡면지에 소개된 상평1리에 전해지는 우물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감곡면지에 소개된 상평리의 우물입니다.
골상촌은 모정거리 앞 산 아래에 옹달샘이 있었는데 바가지 샘이었다. 지금은 호스를 땅에 묻고 모정거리 길가에서 물을 받아 오가는 사람들이 이용한다.또 한곳은 골상촌 올라가는 중간쯤에 향나무아래에 둘레가 시멘트토관으로 되어있는 우물이 있는데 두레박을 이용했고 샘이 지금까지 남아있지만 사용하지는 않는다.아래상촌은 재실아래 건너편에 두레박 샘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외딴터는 샘 너머들 가기 전에 옹달샘이 있었는데 바가지 샘이었다. 겨울에 얼지 않아 외딴터 사람들이 모두 이용했다.
벌말은 개울가에 옹달샘을 만들어놓고 이용했다.지금은 천주교 공소 앞에 대공을 크게 파놓고 물탱크를 공소 뒤 산위에 설치하여 마을 전체가 불편 없이 사용하고 있다.[감곡면지발췌]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 119번지(아랫마을 입구)에는 안동김씨 문온공파 음성공종회에서 세운 「安東金氏世居之地(안동김씨세거지지)」 비(碑)가 세워져 있다.이 비는 1994년 김정묵(金定黙, 공주형무소장)의 장남 김재원(金在元 삼석건업 대표이사)이 경상남도 밀양지방에서 자연석을 구하여 제공하였을 뿐만아니라 건립에 소요되는 비용 일체를 부담하여 1996년 6월18일 보완공사까지 마무리 하였다.글은 김철회(金喆會, 서울 신림중학교장)가 짓고, 대지는 박사댁 김경만(金慶萬)을 대리하여 아우인 김정만(金定萬 효동개발 회장)이 기증하였으며, 글씨는 당시 음성군내 최고의 한학자인 감곡면 오궁리(오갑) 평산인 신현풍(申鉉豊, 감곡중학교장, 음성향교 장의)이 썼다. 추진위원은 김재룡(金在龍, 무극국민학교장), 김상대(金相大), 김홍만(金洪萬)이었다.
처음에는 자연석 좌대에 비를 세웠으나 보기에 너무 낮아 2000년 8월19일과 2002년 9월19일 2차에 걸쳐 1단(段)의 대석(臺石)을 더하여 2단으로 높였고 난간석을 둘러 주변 정화사업을 마쳤다. 비문은 다음과 같다.
- 安東金氏와 桑村의 유래 -
이 마을은 忠淸北道 陰城郡 甘谷面 桑坪里 桑村이며, 安東金氏가 사백여년간 살아온 터전이다. 安東金氏의 시조는 敬順王의 손자 金叔承公이니 工部侍郎平章事로서 안동태수를 지내시다. 중시조는 고려조의 명장군이요, 명재상이신 충렬공 金方慶公이시다. 파조는 文溫公 金九容公이요, 號는 惕若齋, 官은 成均館大司成이니 고려 말엽에 위대한 성리학자요 시인이시다. 公의 七世孫인 金震綱公이 음성현감을 역임하고 서거하자 장남 金大澕公은 이 마을 북쪽 송정벌에 안장하니 조선조 선조 임금 十四年 서기 一五八一년이다. 金大澕公은 河陽현감 재직 시 왕위에 오른 光海君의 폭정이 극에 달하니 공은 심히 개탄하여 벼슬을 사직한 후 가솔을 이끌고 선친의 시묘터인 이곳에 낙향하여 전답을 일구고 뽕나무 수백그루를 심어 호를 桑齋라하고 마을 이름도 桑村이라 하였다. 윗마을 입구 청암반석 위에 자생하던 느티나무 숲을 잘 가꾸고 정자를 세워 자손을 교육하니 이 숲을 모정거리라고 불렀다. 그 후에 조선조 인조 임금은 公의 충절에 감동하여 吏曹參議를 증직하고 한편 河陽縣民은 鄕賢祠에 배향하였다. 이 고장 산천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정기를 타고난 公의 후손은 크게 번성하여 이 고장 일대에 퍼져 사니 백여호를 넘었으며 많은 인재가 벼슬에 올라 선조들의 훌륭한 유훈을 받들어 禮와 義로써 나라 일을 보살피니 모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다. 한편 근면성실하여 치산에 힘쓰니 생활이 풍족하여 만석의 부를 이루기도 하였다. 조국 광복 후 도시산업화 시대를 맞이하여 서울 등 도시로 진출하여 정계, 학계, 실업계 등 각 방면에서 활약하고 있으니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세계무대에서 나라와 가문을 빛낼 인사가 많이 나오도록 축원하여 마지 않는다. 서기 一九九六년 六월 十八일 세움 [감곡면지]





상촌마을 자랑비 입니다.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마을은 약 400년전 처음으로 안동김씨 김진강공의 장남 대화공이 벼슬을 시작하고 이 마을에 정착하고 되면서 뽕나무를 많이 심어 의식주를 자급자족하게 되면서 마을이름을 상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상촌마을은 차령산맥의 지맥인 원통산줄기 가사바위밑에 펼쳐진 작은 분지에 이루어진 촌락으로 마을둘레는 얕은 산으로 둘러 쌓여져 마치 병풍을 두른 것 같아 매우 아늑하고 포근하며 마을안 울창한 느티나무 숲 아래서 푸른 반석위를 구르는 백옥같은 맑은 물소리는 산새와 매미소리가 서로 조화되며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어 이곳에 옛 선비들이 모여앉아 바둑과 장기를 즐기던 이른바 선경으로 상촌 마을은 길이 후대에 자랑거리라 이 비를 새겨 전하다. "

'충북의 바람소리 > 음성군(陰城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감곡면 오향리 청풍김씨영모단(甘谷面 梧杏里 淸風金氏永慕檀) (6) | 2025.08.27 |
|---|---|
| 감곡면 상평리 박병근교장송덕비(甘谷面 桑坪里 朴炳根校長頌德碑) (0) | 2025.08.27 |
| 원남면 마송리 송오마을삼선암각자(遠南面 馬松里 송오마을三仙岩刻字) (3) | 2025.08.26 |
| 감곡면 원당리 신광식송덕비(甘谷面 元堂里 申光湜頌德碑) (1) | 2025.08.26 |
| 감곡면 원당리 박우돈불망비(甘谷面 元堂里 朴遇敦不忘碑) (1) | 2025.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