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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곡면 오향리 청풍김씨영모단(甘谷面 梧杏里 淸風金氏永慕檀) 본문

감곡면 오향리에 위치하고 있는 청풍김씨의 영모단입니다.

청풍 김씨는 김대유를 시조로 하고 김구성을 입향조로 하는 음성군의 세거 성씨로 문평공( 文平公)의 12 세손 월천군(月川君) 김구성(金九 成)이 진천에 살다가 음성군 생극면 생리로 와 세거 하였다. 또 다른 일파가 금왕읍 내곡리에 세거 하였다. 감곡면 영산리에는 충청북도기념 물 제99호로 지정된 경녕군부인 청풍김씨 묘소가 있다. 오향 2리 행군이 마을 남쪽에는 청풍김씨의 묘단이 있다. 청풍김씨 모단은 청풍김씨 2세 시랑 金仁祐(김인우), 3세 감문위상호군 金鉉(김청풍김씨 묘단청풍김 씨 묘단비현), 4세 문하시중 金昌祚(김창조), 5세 판봉상시사 金仲房(김중방), 5세 청로상장군 金仲源(감중원)의 묘단(廟壇)이다. 이 청풍김씨 묘단은 한 가지 사연이 있는데 조상의 묘소를 잃을뻔한 사연이다. 그 사연은 2002년 종인들에게 쓴 청풍김씨 대종회장의 글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이곳은 청풍김씨의 묘단으로서 二세 시랑공 이하 五세까지 모신 제단이다. 선조께서 무오(-八五八)년에 세운 비문에 의하면 고려조에 예를 갖추어 장사 지낸 고분이 우리가 잃었던 선대의 산소 가운데 한분 상이 아닌가 하였으며 계장(繼葬)된 산소는 관찰사 의지(儀之) 공의 손자 광후(光厚) 공이라 하여 이번에 묘단 중수사업에 이르러 묘단을 보수 정리하고 둘레를 담으로 쌓아 사문을 건립함으로써 두 고분에 청풍김 씨와 관련이 있냐 하여 경향각지에서 오신 종인 二十六인의 입회하에 고려조에 예장한 산소를 정말 파묘한 결과 백동 수저 한 벌과 부패한 쇠고리 한 개, 쇠못 다섯 개가 냐왔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므로 원 상태대로 사초하여 복원하였으며 계장(繼葬)된 산소는 파묘한 결과 회광으로 장사를 잘 지냈으며 한 분의 유해만 계시어 고증을 하지 못하고 묘단 좌측 양지바른 곳으로 이장하였다. 신 묘단에는 아무것도 없어 이번 묘단에 신위를 돌에 새겨 모셨으니 두 산소에 미련을 두지 말고 후손들은 묘단에 정성을 다하기 바란다. 西紀 二千二年(壬午) 四月二十八日 청풍김 씨 대종회장 斗永 글 짖고 씀
행군이 마을의 제보자는 청풍김씨 묘단에 대한 얘기를 전해주었는데 청풍김씨대 종 회장의 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옛날에 청풍김 씨 묘한 자리에 묘를 썼는데 고려 시 대의 묘소라 너무 오래되었기도 했고 그간 여러 우여곡절을 지나며 묘소를 잃어버린 것이다. 결국 돌보지 않은 묘소는 묵묘가 되었는데 후에 곡산한씨가 이 자리에 묘를 썼다. 곡산한씨가 묘를 쓰면서 비석과 석물들도 모두 없앴기 때문에 청풍김씨네는 충주 거곡행공리에 조상 묘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근거가 없어 찾지를 못했다고 한다. 결국 청풍김 씨 외손의 족보에 자세한 내력이 있어 이를 근거로 찾기 시작했어며 결국 이 자리가 청풍김 씨의 조상 묘가 있었던 자리였음을 알게 되었다. 어느 정도 물증이 확보되자 송사를 하고자 지금의 행군이 사거리 함석집 행랑채에서 나라의 판 서 세 명이 참석해 대책회의를 했다고 한다. 결국 송사에서 청풍김 씨가 이겨서 곡산 한 씨의 묘를 파하고 다시 묘당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감곡면지]


여기는 우리 청풍김씨(淸風金氏)의 묘단(墓壇)으로 삼가 지극히 받들어야 한다. 시조(始祖) 시중 휘대요(侍中: 諱 大猷) 공의 산소는 오랜 세월 그 위치를 찾지 못하다가 심증(心證)이 가는 청풍부(淸風府) 백치(白峙) 제단(祭壇)에서 제사를 받들고 있다. 二世 시랑(侍郞) 공 이하 五世까지의 산소도 그 모신 곳을 오래도록 알지 못하다가 이제야 그 믿을만한 형적(形蹟)이 발견되기는 하였으나 어느 선조님의 산소인지 상세히 분간할 수 없으므로 이 제단을 마련하는 사유인 것이다. 충주(忠州) 거일면(巨日面) 행곡리(杏谷里:지금 감곡면 오향리)는 예부터 청풍 김정승 산소가 있는 동리라 일컬어오고 그 동북방남향(艮坐) 한 언덕에 예(禮)를 갖추어 장사 지낸 고분은 석재(石材)를 써서 짜여 있었고 축체(築砌) 아래에 계장(繼葬)한 무덤이 있었다. 산 아래 한 씨(韓氏) 성을 가진 자들이 산소의 앞뒤와 좌우 산줄기에 그네들의 무덤을 가득히 쓰고 뒤에라도 이 사실이 드러날까 염려되어 우리 선조의 묘비(墓碑)를 모두 깨어 분산(分散)하여 땅에 묻고 그 흔적을 없앴다는 사실이 근동(近洞) 사람들에 의하여 전해오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후손들이 백여 년(百餘年)에 걸쳐 여러 차례 찾아서 깨어진 비석 한 조각을 한 씨의 무덤 계체석(階砌石)에 놓인 장대석(長大石) 틈에서 찾아냈으나 글자를 모두 쪼아 없앤지라 식별할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그해가 계축 1853년이었다. 희호(熙祜)가 동리사람의 연줄로 우물벽을 쌓은 돌틈에서 비석의 파편(破片)을 얻었는데 앞면에 김 공(金 公) 두 글자만 남아있고 뒷면의 글자는 알아볼 수 없는 중에 함종어 씨 묘(咸從魚氏墓) 다섯 글자를 겨우 읽을 수 있었다. 이해가 정사 1857년이었다. 또 한편 비석의 깨진 조각이 묻혀있는 지점을 안다는 말을 전해 들은 두연(斗淵). 기연(起淵)이 기성(基成) 종인을 보내서 그 지점을 파본 결과 또 글자를 쪼아 없앤 깨어진 비석조
각을 얻었으나 오직 해서(楷書)로 쓴 “청(淸)” 한자만 알아볼 수 있었다. 이것은 경향(京鄕)의 종인들이 모인 가운데 논(畓)의 방축 밑에 묻혀 있는 것을 철장대로 찾아낸 것이다. 이 두 조각을 갖고 이곳에 오래 살아온 토착(土着)사람들의 말을 참고하여 연구한 결과 계장(繼葬)된 분은 다름 아닌 관찰사(觀察使) 공의 손자 광후(光厚)이고 함종어 씨(咸從魚氏)는 그 배위(配位)인 것이다. 간좌(艮坐: 동북방남향)의 묘(墓)는 우리 선조의 산소임이 가히 증명되었다. 이에 관청에 송사(訟事)를 제기하여 가까이에서 우리 선조의 산소를 압박하고 있는 한 씨(韓氏)의 무덤 모두를 옮기게 하니 모든 종인이 서로 감격하여 사모하는 나머지 서로 붙들고 탄식하기를 우리 선조 윗대(代)에서 크게 떨쳤고 그 뒤 지금까지 현달(顯達)하고 있는데도 그 유택(幽宅)이 전하지 못함을 한스럽고 죄송하게 여겨왔는데 이제 다행히 비석 조각이나마 얻었다. 글자를 모두 쪼아버린 나머지라 휘자(諱字)와 관직(官職)등 완전한 징표는 찾지 못하였다. 비록 지금에 갑자기 산소에서 제사 받들 것을 감히 의논할 수 없으나 산소 대신 사당을 짓고, 제단을 마련함은 예로부터 예(禮)이며 근거(根據)가 있는 것이니 김(金) 장(張) 두 분 태사(太師)의 제단이 그것이요 또한 우리 가문의 전례(前例: 始祖祭壇)도 있으니 마땅히 인용(引用)할만한 것이다. 이에 제단을 간좌(艮坐)의 묘아래 설축(設築)하였으니 한해 한번 제사 받들어 선조로부터의 예의를 옥(玉) 다듬듯 하라. 비석(碑石)에 새겨 일러두느니 정자(程子)의 말에 ⎾가문대대의 정신을 집중하는 것은 곧 이곳에 있다⏌한 것이 있는바, 하물며 이 산(山) 근처에는 우리 김 씨 산소들이 마주 바라보고 있으니 그 모두 후손들이라 구름처럼 모이는 곳에 선조와 한 기운이 상통하여 너울너울 물의 신령(神靈)과 같이 이곳에 의지할지니 보호하는 지조(志操)와 제사 받드는 예의는 오로지 만 자손(萬子孫)의 도리에 달려있느니라. 후손 숭정대부행 의정부 우참찬 겸 판의금부사원임 규장각제학 학성(學性) 짓고 통정대부 이조참의 익문(益文) 글씨 쓰고 통정대부 승정원우부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 세호(世鎬) 전자 쓰다
감동유사: 익성(益成) 기성(基成) 준연(俊淵) 기연(起淵) 동준(東俊)
숭정기원후 四무오 1858년 월 일 세우다
서기 2013년 7월 일 번역비를 세우다
청풍김씨대종회장 相 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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