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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곡면 상평리 정국량효자문(甘谷面 桑坪里 鄭國樑孝子門) 본문

감곡면 상평2리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조 효자 정국량의 효자비각입니다.
효자비각의 정확한 지번은 상평리 353번지 입니다.

정국량(鄭國樑)은 본관이 초계 자(字)는 공거(公擧)이다.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문으로 단간 팔작지붕목조기와집으로 정문안에는 현판이 아니라 비석으로 되어 있다. 국량(國樑), 국주(國柱), 국추(國樞), 국노(國魯), 국빈(國彬)의 5형제가 있었으며, 모두 효성이 있어서 오효자라고 불렀다.
국량(國樑)의 효행적을 보면 임진왜란 때 부친이 오랜 질병 끝에 돌아가셨는데 장례를 치르지 못한 상황에 왜병이 이 곳 마을을 습격해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피난을 갔으나 아버지 때문에 피난을 가지 못한 그는 홀로 이 마을에 남아 있었다. 왜병들이 마을에 들어와 보니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 볼 수 없었으나, 유독 정국량이란 사람만 아버지 시신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광경을 본 왜장(倭將) 현몽(玄夢)은 그의 효성(孝誠)에 감동하여 물침기(勿侵旗)(아무도 침범하지 말라는 표시의 깃발)를 주었다. 이로 인하여 임진왜란을 무사히 넘길 수가 있었다.[감곡면지]

감곡면 상평리 효자정국량효자비(甘谷面 桑坪里 孝子鄭國樑孝子碑)
감곡면 상평리 효자정국량효자비(甘谷面 桑坪里 孝子鄭國樑孝子碑)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정국량의 효자각. 본관이 초계(草溪)인 정국량에게는 정국주, 정국추, 정국노, 정국빈 등의 형제가 있었다. 모두 효성이 뛰어나 마을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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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면 : 宣廟朝旌閭 孝子 贈參判鄭國樑 (선묘조정려 효자 증참판정국량)
뒷면 : 墓甲方八十步 閭次百三十步 癸亥五世孫歸謹書(묘갑방팔십보 려차백삼십보 계해오세손귀근서)
이 비는 효자 정국량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비의 전면에는 “선묘조정려 효자증참판정국량(宣廟朝旌閭 孝子贈參判鄭國梁)”이라 되었고 뒷면은 “묘갑방팔십보 려차방백삼십보 계해 오세손귀근서(墓甲方八十步 閭次方百三十步 癸亥 五世孫歸謹書)”라고 새겼다.비석의 총 높이는 172cm,개석 높이34cm 가로85cm 세로53cm 비신 높이110cm 가로44cm세로23cm방부 높이28cm 가로84cm 세로58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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