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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덕읍 전주이씨효부문(周德邑 全州李氏孝婦門)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주덕읍 전주이씨효부문(周德邑 全州李氏孝婦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6. 8. 09:40

 

조선(朝鮮) 순조(純祖) 3년(1803)에 명정(銘旌)된 정려(旌閭)로서 효부(孝婦) 전주리씨(全州李氏)의 아름다운 효행(孝行)을 찬양하기 위하여 건립된 정려(旌閭)이다.마을 회관 바로 옆에 느티나무 보호수와 같이 위치하고 있는데, 맹동 마을로 들어서는 낮은 언덕 위에 자리하여 보호수와 어우러진 자연 마을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볼 수있는 곳이다.



 

 

내부에는 최근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효부(孝婦) 비(碑)를 안치하고 있다.
정수동(鄭秀棟)의 처(妻) 전주이씨(全州李氏)는 효부(孝婦)로 이 지역에서 칭송이 자자했다한다. 오천 정영택이 지은 정문중창기에 의하면 기미년 정월에 시모(媤母)께서 돌아가시자 마을사람들은 전염병으로 의심하므로 그 시부(媤父) 또한 집 뒤의 서당에 은거케 하였으나 발병(發病)하여 이씨(李氏)는 새벽 일찍 약을 다려 남편과 같이 간호하였으며 날이 새면 시모범연에 돌아와 진심으로 서럽게 곡(哭)하며 절하고 밤이 깊어서야 귀가하며 상복을 벗지 않았다한다. 또한 제수(祭需)를 마련할 때 울안에 샘을 따로 파 놓고 사용했다한다. 약주(藥酒)를 좋아하는 시부를 위해 항상 좋은 술을 빚어놓고 엄동설한(嚴冬雪寒)에도 새벽닭이 울면 그 술을 데워 드리는 일을 하루라도 거르지 않았다한다.
어느 해, 하루는 시부께서 학질(瘧疾)에 걸려 누워계시자 엄동설한에 자라탕을 해드리고자 얼음을 깨고 이곳저곳을 뒤지는데 그 효성(孝誠)의 지극함에 천우신조(天佑神助)함인지 큰 자라를 잡아 시부님의 구미(口味)를 돋우어 드린 적도 있다한다. 그러나 병환(病患)이 점점 더하여서 급기야 혼절(昏絶)하게 되자 남편 정수동(鄭秀棟)이 손가락을 베고, 이씨(李氏)도 따라서 단지(斷指)하여 시부의 입에 흘려 넣자 다시 소생하여 며칠간을 지탱하였으나 천명(天命)이 다했음인지 별세(別世)하고 말았다 한다.
이러한 연유로 영조 19년(1743) 정문을 세우도록 명하였다한다.
이보다 앞서 숙종조(壬辰年)에 처무사인이 만성에게 수암 권상하선생이 지은 정문이 상달된바 있으며 이 사실이 여람에도 기록되어있다 한다


 

전체 배치는 마을회관 옆 보호수와 나란히 서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마을 입구의 비교적 높지 않은 낮은 산의 경사를 이루는 지형에 견치돌쌓기로 단을 만들어 효부문을 앉히고 있다.경사를 이루므로 2단의 기단을 만들고 진입은 계단을 통하여 오르게 되어있다. 계단을 오르면 콘크리트 담장을 두르고 그 가운데 정려(旌閭)가 자리하고 있다. 정려(旌閭)는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이다. 시멘트 마감한 바닥위에 160mm 높이의 화강암을 다듬은 원형 주초를 올리고 있다. 벽체는 초석 바로 위 기둥에 하인방을 결구하고 기둥 2/3위에 중인방을 설치하여 사면으로 120mm 간격으로 홍살을 설치하고 있다. 이러한 개방된 구조는 정려를 통해 충효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개방되면서 보호와 기념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기둥 위에는 주두를 놓고 주두 하부에는 주간에 창방을 결구하고 있다. 기둥의 공포는 익공계 공포로, 초익공은 앙서이고, 이익공은 수서로 된 이익공으로 되어있다. 주간 창방 위에는 6기의 소로를 설치하고 장혀를 받치고 있다. 주간의 소로는 중앙에는 놓지않고 양쪽에서 3기씩을 배치하고 있다.


 

 

 

서까래, 보머리 부리에는 육매화점이 있으며,서까래에는 웅화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머리초 주위에도 육매화점의 직휘띠를 들르고 있다.
가구는 납도리 삼량가이고 지붕은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정려 내부에는 마룻대하부의 장혀에 <효부 학생 정수동 처 유인 전주이씨지문 숭정후재 계해삼월 일 명하재갈(孝婦 學生鄭秀棟妻孺人全州李氏之門 崇禎後再 癸亥三月 日 命下齋楬)>이라고 쓴 정려(旌閭) 편액을 결구하여 매달고 있다. 또한 후면의 도리에는 <효부 이씨 정려문 중수기(孝婦李氏旌閭門重修記)>가 있다.
특히 이곳 맹동 마을은 돌이 아주 귀하다한다. 그래서 보호수와 정려문(旌閭門) 주변의 기단을 쌓을 때 집집마다 20개씩의 돌덩이를 추렴하여 쌓았다는 조금은 특이한 전설을 마을 어른들은 들려준다


 

 

 

 

 

 

 

 

 


  • [정의]
  •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대곡리 맹동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문.
  • [개설]
  • 초계정씨 정수동전주이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03년(순조 3) 명정(命旌)되어 건립한 건물이다.

    전주이씨는 어느 날 시어머니가 사망하자 마을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의심하여 시아버지를 집 뒤 서당에 은거케 하였는데,

    시아버지에게 병이 발병하자 새벽 일찍 약을 달여 남편과 같이 간호하였고, 날이 새면 시어머니 범연에 돌아와 진심으로 곡(哭)을 하며

    밤이 깊어서야 귀가하고 상복을 벗지 않았다.

    또 시아버지가 학질에 걸려 누워 있자 엄동설한에 자라탕을 해주기 위해 얼음을 깨고 찾았는데,

    천우신조 탓으로 큰 자라를 잡아 시부의 입맛을 돋운 적도 있다.

    그러나 병환이 더욱 위급해져 급기야 혼절하게 되자 남편 정수동이 손가락을 베고 전주이씨도 따라서 단지(斷指)하여 시부의 입에 흘려 넣자

    다시 소생하기도 하였으나 천명이 다했음인지 별세하였다.

  • [위치]
  • 충주 시내에서 남쪽 방향인 주덕읍에서 창전리를 지나면 대곡리 맹동(맹골) 마을에 이르면, 도로변 민가 끝의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 [형태]
  • 남향 배치의 정문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로, 사면에 홍살을 두른 목조기와집이다. 내부에는 정려문 편액이 걸려 있으며,

    구조는 원뿔형 주초석을 놓고 원형주를 세워 이익공(二翼工) 계통의 공포(栱包)로 구성하였고,

    창방(昌枋)으로 결구된 주칸에는 6구의 소로[小累]를 놓아 주심도리 장혀를 받치고 있다.

    가구는 양측 대량 상부에 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게 한 3량가로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 [현황]
  • 전주이씨 효부문의 건물 부재를 모두 단청하였으며, 문 주위에는 별도로 시멘트 벽돌 담장이 둘려져 있다.

    맹동마을 마을회관 바로 옆 낮은 언덕에 느티나무 보호수와 같이 있어 분위기를 살리고 있다.

  • [의의와 평가]
  • 며느리와 부인으로서 가정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혼신의 힘으로 효심을 발휘하였던 효부를 기리기 위한 정려문으로, 잘 보존, 관리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