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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금면 창동리오층석탑(可金面 倉洞里五層石塔)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가금면 창동리오층석탑(可金面 倉洞里五層石塔)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6. 15. 09:50

 

 

 

 

 

 

 

 

 

 

 

 

 

 

 

[사진 오른쪽위로 옛모습의 석탑이 보인다]

  • [정의]
  •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창동리에 있는 고려 전기 석탑.

  • [개설]
  • 중원 창동 오층석탑은 원래 100m 정도 북쪽으로 떨어진 민가에 세워져 있었는데, 1977년경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운 것이라고 한다. 석탑이 있었던 자리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석탑이 건립되었던 것으로 보아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탑이 고려시대 건립된 것으로 보아 원래의 사찰도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 [건립경위]
  • 창동리 일대의 남한강변에는 많은 불교 유적과 유물들이 남아 있다. 이 석탑도 이 일대에 있었던 사찰 가람의 한가운데에 건립되어 신앙과 예배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정연한 치석과 결구 수법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수한 장인에 의하여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위치]
  • 충주시 가금면 창동리 마을 한가운데 남한강변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71호인 충주 창동리 약사여래입상과 나란히 세워져 있다. 석탑 인근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6호인 창동 마애여래불상이 남한강을 바라보고 조성되어 있다.

  • [형태]
  • 중원 창동 오층석탑은 2층 기단으로 마련되었으며, 탑신부는 5층으로 결구되었고 상륜부는 노반을 제외하고 남아 있지 않다. 하층기단은 2매의 부재로 결구하였는데, 상층기단에 비하여 상당히 넓게 마련되었다. 면석부에는 우주와 탱주를 세웠는데, 우주는 탱주에 비하여 좌우 너비를 좁게 하여 다른 석탑에서는 보기 힘든 이채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층기단 상면에는 낮고 높은 2단의 괴임을 마련하였다.

    상층기단도 면석부에 우주와 탱주를 모각했는데 탱주의 좌우 너비가 더 넓다. 상대갑석도 면석부와 동일석으로 치석 결구하였으며 부연은 표현되지 않았다. 기단부는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 양식을 채용하였지만 탱주의 표현 기법, 괴임대의 마련 수법, 부연이 표현되지 않은 갑석 등에서 간략화된 경향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상대갑석 상면에는 별도의 괴임단을 마련하지 않고 별석형의 높은 받침대를 올렸다.

    석탑에서 별석형 받침대를 마련하는 것은 고려시대 석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법이다. 탑신석은 좌우에 우주를 새겼으며, 2층 탑신석부터는 높이를 현격하게 낮추어 5층까지 거의 동일한 높이를 유지하도록 했다. 옥개석은 정연한 치석 수법을 보이고 있는데, 처마면을 다소 두툼하게 마련하여 둔중한 인상을 주고 있다. 옥개받침은 상층으로 올라가면서 단수를 줄였으며, 처마부에 낙수홈을 넓게 마련하였다.

    낙수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처마 쪽으로 내려오고 있고, 전각부에서 반전을 주어 경쾌한 인상을 주도록 했다.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 있다. 한편 1977년경 석탑 이건 당시 3층 옥개석 상면 중앙부에 지름 22㎝, 깊이 15㎝가량의 원형 사리공이 있었는데, 상부에 석조로 된 얇은 덮개가 있었다고 한다. 덮개석을 열자 그 안에는 고운 모래흙이 채워져 있었다고 전한다.

  • [현황]
  • 중원 창동 오층석탑은 1977년경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웠으며, 상륜부가 노반을 제외하고 남아 있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석탑이다.

  • [의의와 평가]
  • 정연한 치석과 결구 수법을 보여주고 있는 고려시대 전형 양식의 석탑이다. 기단부는 일부 표현이 생략되면서 간략화의 경향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 기단부 양식과 친연성을 보이고 있으며 탑신부는 고려화된 석탑 양식을 강하게 담고 있다. 또한 세부적인 표현에서 고려시대 장인이 나름대로의 특성을 적용하였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이 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석탑 양식을 바탕으로 지방이나 장인에 따라 완전히 고려화된 석탑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특히 1층 탑신석 하부에 마련된 별석형 받침은 고려시대의 특성이 가장 잘 반영된 부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