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면 구암리 언덕에 있다.단장도 잘 해놓았다.진주하씨 정려비의 건립일에 광서(光緖)라는 연호가 이채롭다

광서는 당시 청국에서 사용하던 연호이기도 했다.조선 고종31년(1894)에 경주인 김용호의 효행과 그의 처 진주하씨의 효열을 기리어 세운 정려이다

 

 

 

구암리는 청주 남차이면의 지역으로 거북바위가 있으므로 거북바위 또는 구암 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토포리, 방곡리, 추동, 안대, 북리 일부를 병 합하여 구암리라 해서 남이면에 편입되었다.九岩里는 慶州金氏 中始祖 鷄林君 齊蕭公의 11世孫 龜嚴公이 자리잡은 이래 많이 살았으며 현재는 30戶가 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다음과 같다.

  • 본동 : 구암리의 중심 마을로 청주혜화학교가 위치해 있다.
  • 새터말 : 본동 북서쪽에 있는 마을.
  • 부수동 : 본동 북쪽에 있는 마을로 뒷 산에 연화부수혈이 있다.

 

김용호와 그의 처 진주하씨를 모신 쌍정려입니다.

 

기타지명으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 千房山 : 千房山은 옛날 이곳에 寺刹이 있었는데 寺刹의 방이 천개였으나, 빈대가 많아 헐렸다는 전설이 있다.
  • 白山 : 새터말 뒷산으로 산에 나무가 없고 흰모래가 많았다고 한다.
  • 강령골 : 토개 동쪽에 있는 골짜기.
  • 구레 : 본동 서쪽에 있는 골짜기.
  • 구암공동묘지 : 본동에서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 금반량 : 九岩 북쪽에 있는 산.
  • 위토개 : 본동 동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1호가 거주한다.
  • 천이(千房이) : 본동 동쪽 千房山 아래에 있는 마을로 2호가 거주한다.
  • 토개 : 부숫골 동쪽에 있는 마을로 경부고속도로 신설시 편입되었다.
  • 홍골 : 새터 북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1戶가 거주한다.
  • 서당골 : 새터 북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옛날 書堂이 있었으며 2戶가 거주한다.
  • 융골 : 새터 동남쪽에 위치한 골짜기.
  • 분토골 : 본동 서쪽에 위치한 골짜기.
  • 장승배기 : 浮水洞 남서쪽에 위치해 있는 산.
  • 지야밭 : 홍몰 동남쪽에 위치한 골짜기.
  • 마을회관 : 1993년에 본동에 건립한 마을회관이 있다.

 

효열유인진주하씨정려비라고 적혀있으며 후면에는 광서이십년 갑오팔월이라고 적혀있습니다.

 

 

 

화산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생긴 이름으로, 화산리(畵山里)는 화암(畵岩)과 사산(斜山)에서 한 자씩 따서 생긴 지명이다. 화암은 ‘빗길미’ 서남쪽에 있던 마을이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4년 이전)에는 ‘두물둔지’로 나오고, ‘화암’이라는 한자 지명이 대응되어 있다. ‘사산’은 본래 ‘서남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빗길미’라고 불렀다. 빗길미는 ‘비스듬한 형상의 산’으로 해석되고 이에 대한 한자 지명이 사산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軍資監正林秀蓂公懿蹟碑(군자감정임수명공의적비)라고 비석의 전면에 적혀 있으며 좌,우,후면에는 임수명의 행적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1980년 입니다. 임수명(林秀蓂)에 대하여는 한국학중앙회로 링크해 놓았습니다.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 한국학중앙연구원 [임수명(林秀蓂) 인물 정보] (aks.ac.kr)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 한국학중앙연구원 [임수명(林秀蓂) 인물 정보]

  [부(父)] 성명 : 임춘(林春) [안항(鴈行)]

people.aks.ac.kr

 

 

 

상산 옛고을 구곡땅 세금천의 맑은 정기를 타고 충효로 일세에 본이 되는 분이 있으니 그는 상산인 임수명공이시다. 공은 부사직을 지낸 춘 의 아들로 빛나는 가문에서 태어났다. 공은 선조 임진왜란에 공의 백형인 수전이 의병을 일으켜 죽산봉성에서 왜적과 격전을 치루며 용감히 싸웠으나 부족한 무기와 인원으로 인해 장렬하게 순국하였다.후에 형조참의에 증직되고 명정되어 충신정려문이 세워져 오늘에 전한다. 그런데 정유재란으로 왜구가 다시 침범하자 안성사인 홍계남이 창의하여 의병을 이끌고 진천에서 싸울 때 공은 국운이 위급함을 좌시 할수가 없어 향리에서 의병을 일으켜 홍계남의 의병과 합세하여 북상하는 왜적을 맞아 싸워 물리쳐 기호지방의 안정을 이룩하였다. 이로 인하여 공은 선전관에 제수되고 군자감 정에 증직되었다. 공은 또한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 현제우애하고 친족이 화목하였다. 공은 배 한양조씨와 사이에 삼남을 두었는데 첫째는 현감이요 둘째는 통덕랑이며 셋째는 증 판결사이며 현손 봉서는 훈련판관이니 영조 무신란에 공을 세워 왕이 친히 치하하며 손을 어루만지니 황공하여 종신토록 그 손을 금포로 싸매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문중에 자손이 번창하고 효와 절이 특출하니 원근의 종족이 봉선추모의 뜻을 이기지 못하여 비석을 세우고 그 뜻을 새기니 선조의 어질고 두터운 언행과 뜻을 길이 후손에 잇고자 공의 의적을 적어 뒷날에 전한다.

 

구곡리에 있는 임수전부자충신문입니다.

 

문백면구곡리임수전부자충신문(文白面九谷里林秀荃父子忠臣門) (daum.net)

 

문백면구곡리임수전부자충신문(文白面九谷里林秀荃父子忠臣門)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임수전·임현 부자의 정려. [개설] 임수전(林秀荃)은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출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아들 임현(林賢)과 함

blog.daum.net

 

 

 

언제나 좋은 냉모밀.

값도 저렴하고 참 좋습니다.

냉모밀 곱배기가 9000원입니다.

'푸른바다의 창가에서 > photo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보다 아름다운 너.  (0) 2022.06.09
아이들의 웃음소리.  (0) 2022.06.04
냉모밀.  (0) 2022.05.31
매죽정(梅竹亭)  (0) 2022.05.03
그림자.  (0) 2021.09.02
무엇이면 어떠리.  (0) 2021.08.3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