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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4/10/12 (2)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목사이후채청덕애민영세불망비( 牧使李侯采淸德愛民永世不忘碑 )라고 적혀있으며 비석의 후면의 건립시기를 보면 가경(嘉慶)7년(1802년) 임술(壬戌)년 가을이다. 달천대교옆에 있던 것을 충주시에서 정비하면서 달천동과 단월근처에 산재되어 있던 비석들을 이 곳으로 옮겨 개립하였다. 이채(李采)는 조선 후기에 상주목사, 황주목사, 경주부윤, 승지 등을 지낸 문신이다.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계량(季亮), 호는 화천(華泉)이며,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손자이다. 이재는 여흥민씨 민유중의 딸인 인현왕후의 조카로서, 노론의 핵심 집안으로 분류된다. 이채는 진사시에 합격한 이후 1780년까지 호조정랑, 돈녕부 주부, 음죽현감으로 활동하였으나, 1780년 이후로는 주로 향리에 머물며 학문 연구에 주력하면서 조부 이재..
임직현 청덕비는 단월동 상단마을 시내버스 정류장옆에 자리하고 있던것을 이 곳으로 옮겨 다시 세웠습니다. 앞면의 비제는 7×7㎝ 크기의 해서체로, ‘남변면장임직현청덕비(南邊面長林稷鉉淸德碑)’라 음기하였다. 뒷면에는 ‘무신 십일월 일 각동립(戊申十一月日各洞立)’이라 음기하였다.서기년도로는 1908년입니다. 임직현(林稷鉉)에 대하여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다만 1914년에 충주군 남변면과 북변면이 통합되어 충주군 읍내면으로 개편되었는데, 임직현 청덕비가 1908년 건립된 것으로 미루어 1896~1908년 사이에 면장을 역임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기호흥학회보』 제7호의 회중 기사에 의하면, 임직현은 충주군 기호흥학회의 평의원 24명 중의 1인으로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기호흥학회가 애국계몽운동 단체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