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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경주이씨 (18)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초평면 용정리에 위치한 이시발의 묘소를 찾아 보았습니다. 묘역에는 아버지 이대건과 손자인 이인환의 묘가 있으며 이 묘역에서 50여미터 떨어진곳에 이시발의 부인인 고령신씨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곳 용정리는 이시발과 관련된 유적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쌍오비각은 마을초입에 자리하고 있으며 쌍오정자터등은 접근이 힘듭니다. 이시발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 또는 후영어은(後潁漁隱). 이원(李黿)의 고손이며, 이발(李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경윤(李憬胤)이다. 아버지는 진사 이대건(李大建)이며, 어머니는 안동 김씨로 김도(金燾)의 딸이다. 이덕윤(李德胤)의 문인이다. 6세에 아버지가 죽고, 1589년(선조 22)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에 등용되었다. 임진..
미원면 가양리 수락동에 위치한 이공린의 부인 숙인순천박씨의 묘비입니다.이공린의 묘소와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묘비에는 숙인순천박씨지묘(淑人順天朴氏之墓)라고 적혀있습니다.무덤은 근래에 후손들에 의하여 호석(護石)을 둘렀습니다.순천박씨는 사육신 박팽년의 딸입니다.이공린은 박팽년의 사위라는 이유로 많은 제약을 받았습니다.
미원면 가양리 수락동에 자리하고 있는 경주인 이공린의 묘비입니다.묘비에 전면에는 통훈대부행창평현령이공지묘(通訓大夫行昌平縣令李公之墓)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이공린의 무덤은 후손들에 의하여 새로 개축이 되었습니다.새로 호석(護石)을 두르고 문인석과 장명등 등을 만들었습니다. 이공린은 본관은 경주(慶州). 이제현(李齊賢)의 6대손이며, 아버지는 관찰사 이윤인(李尹仁)이다. 어려서부터 재질이 뛰어났고 포부가 원대하였다. 그러나 장인 박팽년(朴彭年)의 죄에 연좌되어 몇년간 관직에 나갈 수가 없었다.그 뒤 사면되어 무반의 직을 잠시 가졌다가 천거로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가 되고, 한성부참군을 겸하였다. 이어 흥덕현감·함열현감·창평현감을 역임하면서 향리를 잘 통솔하고 백성에게 선정을 베풀었다.1504년(연산군 10..
수락영당은 미원면 가양리 45-6번지에 있습니다. 고종 광무2년(1898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수락영당은 고종 광무2년(1898년)에 진천 양호사에 봉안됐던 계림부원군 문충공 문하시중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78-1367)의 영정을 이곳으로 이전 봉안한 경주이씨의 사당이다.매년 음력 3월15일과 9월9일에 향사한다. 영정은 고려 충숙왕 6년(1319)에 원나라의 오수산(吳壽山)이 그린 이제현(李齊賢)의 초상화를 후대에 모사한 것이다.선비복장을 한 반신상으로 그렸으며 가로 49센티 세로 93센티의 설채견본이다. 입구에는 영모문(永慕門)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영정의 윗부분에는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이 쓴 제기가 있는데 이거은 이제현이 고려 충청왕2년(1350)에 지은 자찬문을 옮..
미원면 가양리에서 수락영당이 있는 수ㅡ락동으로 가다보면 경주이씨묘지가 있는 오른쪽 산능성밑에 자리하고 있다. 경주이씨묘원에 이공린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이 묘갈이 신도비를 대신하고 있다. 공의 휘(諱)는 공린(公麟)이요, 자(字)는 백시(伯時)요, (자호(自號)는 용면 거사(龍..
미원면 가양리에 위치하고 있는 이창원의 효자비입니다 가양리에서 수락영당이 있는 수락동으로 가는 길에 경주이씨 묘원을 오르는 길 오른쪽에 이공림의 신도비와 같이 서있다. 1932년에 세웠으며 이규익(李圭益)이 식(識)하여 세운것이다. 효자통덕랑이창원지비(孝子通德郞李漲源之碑)라고 적혀있다. 통덕랑은 조선시대 정오품(正五品) 동반(東班) 문관(文官)에게 주던 품계(品階)이다. 정오품의 상계(上階)로서 통선랑(通善郞)보다 상위 자리이다. 1392년(태조 1) 문산계가 제정된 이후로 문관에게만 주다가, 대전회통(大典會通)에서는 종친(宗親: 임금의 4대손까지의 친족)에게도 이 품계를 주었다. 해당 관직으로는 종친부(宗親府)의 령(令)·전부(典簿), 의정부(議政府)의 검상(檢詳), 육조(六曹)의 정랑(正郞), 규장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