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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고령신씨 (17)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가덕면 인차리에 위치한 가덕면사무소 도로에 접환 화단에 있는 신윤식의 비석입니다.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 비석의 받침돌을 만들었습니다. 비석의 위치는 도로개설등으로 인하여 이 자리로 옮긴 듯 합니다.가덕면민 일동이 세운 비석으로 어렵던 시절(일제강점기와 6.25전쟁 후) 면민들을 위해 물질적으로 면민들을 도운 신윤식의 선행을 잊지않기 위해 세운 비석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신윤식씨구제기념비(申潤植氏救濟紀念碑)라고 적혀있습니다.신윤식의 비석은 현재 가덕초등학교 교내에도 1기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미루어 보아 신윤식은 가덕면을 많이 사랑하고 가덕의 교육에도 앞장섰음을 알수 있습니다. 가덕초등학교의 비석이 1952년도에 건립되었으니 이 비석도 일제강점기 말엽이나 또는 6.25전쟁 전후에 세워진 비석으로..
조선 숙종3(1677년)에 東部主簿를 지낸 白石亭 신교(申灚 ; 1641∼1703년)가 세은 고령신씨의 정자이다. 현재의 정자는 1927년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관정리 마을 앞 도로를 따라 마을 끝자락을 돌아가면 마을 뒷산 중턱 절벽에 바위를 의지하여 자리하고 있다. 지형상 뒤편에 산을 두고 북향하여 바위에 입지하였으며, 백석정 아래에 넓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건물로의 진입은 절벽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약 10m 정도 들어가면 일각대문이 놓이고 그 안에 백석정이 자리한다. 신교(申灚)는 1677년 낭성천(한강의 상류)의 芷潭 邊 절벽에 매달린 높은 바위 위에 백석정을 창건하여 自號로 白石亭이라 명명하고, 그곳에서 당대의 嶺南과 畿湖지방의 유명한 文士들과 문장과 詩歌를 짓고 교류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낭성면 귀래리에 위치하고 있는 신채호선생의 동상입니다. 귀래리에는 신채호선생과 관련된 유물관과 함께 동상 그리고 영당과 선생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찾은날은 코로나로 인하여 유물관은 입장할수가 없었으며 동상과 함께 영당 그리고 무덤만 둘러 볼수 있었습니다. 신채호는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호는 일편단생(一片丹生), 단생(丹生) 혹은 단재(丹齋)이다. 1880년 12월 8일 충청남도 대덕군(大德郡) 산내면(지금의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필명은 금협산인(錦頰山人), 무애생(無涯生), 열혈생(熱血生), 한놈, 검심(劍心), 적심(赤心), 연시몽인(燕市夢人) 등이다. 조선시대 신숙주(申淑舟)의 18대 손이 된다. 고령신씨(高靈申氏)의 일부는 연산군 무렵에 낭성과 가덕 지방에 낙향하..
조선 숙종3(1677년)에 東部主簿를 지낸 白石亭 신교(申灚 ; 1641∼1703년)가 세운 고령신씨의 정자이다. 현재의 정자는 1927년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관정리 마을 앞 도로를 따라 마을 끝자락을 돌아가면 마을 뒷산 중턱 절벽에 바위를 의지하여 자리하고 있다. 지형상 뒤편에 산을 두고 북향하여 바위에 입지하였으며, 백석정 아래에 넓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건물로의 진입은 절벽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약 10m 정도 들어가면 일각대문이 놓이고 그 안에 백석정이 자리한다. 신교(申灚)는 1677년 낭성천(한강의 상류)의 芷潭 邊 절벽에 매달린 높은 바위 위에 백석정을 창건하여 自號로 白石亭이라 명명하고, 그곳에서 당대의 嶺南과 畿湖지방의 유명한 文士들과 문장과 詩歌를 짓고 교류하였다. 에는 신교가 지..
가덕면 행정리 복지회관앞에 자리하고 있는 고령인 신형식의 공덕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고령신공형식공덕비(高靈申公亨植功德碑)라고 적혀있으며 비석의 후면에는 공덕내용이 적혀있습니다. 비석후면의 공덕내용을 보면 "신형식공과 처 하월정님은 안동김공 진옥 분을 1985년 부터 6년간 김공이 생을 다할때 까지 정성을 다해 모셨다.그 보답으로 김공은 신공에게 답800평을 유산으로 남겼다. 2003년 신공 별세 후 김공이 남겼던 답을 형식공이 행정리 마을공동소유로 귀속하게 하였으니 신공의 덕이 크다 아니할수 없어 그 선행과 덕을 높이 기리고 후세에 귀감을 삼기 위하여 이 비를 세운다. 2013년4월5일 행정리 동민일동'이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소재지는 미원면 운교리 156번지입니다.함벽정이 세워진 구룡천은 미원천 대덕리 좌구산(658m) 아래에서 발원해 운교리, 구방리를 거쳐 청천면 청천리로 흘러내려간다 구룡천은 운교리, 기암리, 구방리로 흘러간다. 운교리라는 행정명칭은 자연마을인 운곡과 석교에서 한자씩 따 만들어졌다. 운교리는 산촌 생태마을로, 보건진료소가 있다. 함벽정(涵碧亭)은 ‘젖을 함’(涵)에 ‘푸를 벽’(碧)을 써 ‘푸름에 젖은 정자’라는 뜻이다. 1630년(인조 8) 사과(司果)를 지낸 함벽 신중흡(申仲洽)이 미원면 운교리(雲橋里) 구룡천 개울가에 세운 정자이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966년 미원면 운교리 구룡천 옆 산 중턱으로 옮겨 중수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내부는 통간에 마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