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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민여개 (2)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공자의 제자 민자건(閔子騫)의 후손인 민칭도(閔稱道)가 고려 중엽에 중국의 사신으로 상의국(尙衣局) 봉어(奉御)를 역임하고 여흥(驪興)[지금의 여주]에 정착함으로서 민씨(閔氏)의 시조가 되었다. 입향조는 18세손 민여개(閔汝漑)로 병자호란(1636)이 일어난 이듬해 서울에서 청원군 내수읍에 있는 입암공(立巖公) 민제인(閔齊仁)의 우거지였던 문지 선바위로 낙향하여 정착함으로서 세거지의 기반이 되었다. 이후 중시조인 16세 감창공 민제영(閔齊英)의 맏아들 민사완(閔思完)은 청원군 내수읍 입동리에, 둘째 민사굉(閔思宏)은 미원면 북바위에, 셋째 민사건(閔思騫)은 흥덕구 신전동 추동(楸洞)을 각각 세거지로 삼고 번창하니 모두 300여 호의 집성촌을 이루었고 이 고장 12촌락을 민마루 열두동네[閔宗12洞]라 일컽..
민여개(閔汝漑 1565-1638)는 조선중기의 인물로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고려조에 상의봉어(尙衣奉御)를 역임한 민칭도(閔稱道)의 17대손으로 자(字)는 이실(而實)이다. 아버지는 민사완(閔思完)으로 봉사(奉事)를 지내고 좌승지(左承旨)에 증직되었다. 민여개는 성균관(成均館) 청금록(靑衿錄)에 입적한 유생으로 병자호란때에는 남한산성에 호가(扈駕)한 후 1618년 입동2리 선바위에 낙향하였다. 인조22년(1644)에 가선대부 호조판서(嘉善大夫 戶曹判書)에 추서되고 문헌공(文軒公)으로 불린다. 부인은 증정부인 진주유씨(贈貞夫人 晋州柳氏)이다. 묘지는 호석을 두르고 있으며 문인석과 동자석 상석을 갖추고 있다.묘지는 원통리 마을 뒷산에 자리하고 있다. 묘비는 신,구비가 나란히 묘지를 중심으로 좌우에 자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