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화양구곡
- 효자각
- 화양동 암각자
- 각연사
- 문의문화재단지
- 밀양박씨
- 문경새재
- 국립청주박물관
- 사인암
- 법주사
- 청주박물관
- 사과과수원
- 한독의약박물관
- 부도
- 경주김씨
- 오블완
- 단지주혈
- 보성오씨
- 충주박물관
- 선돌
- 상당산성
- 공주박물관
- 티스토리챌린지
- 청풍문화재단지
- 곡산연씨
- 부여박물관
- 충북의 문화재
- 공산성 선정비
- 효자문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Today
- Total
목록오윤묵 (2)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옥천읍 교동리 비석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때 도평의원을 지낸 오윤묵의 송덕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도평의원오윤묵송덕비(道評議員吳允黙頌德碑)라고 적혀있습니다. 오윤묵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는 않았으나 지역 유력자로 일제의 통치에 부응하거나 도움을 주고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윤묵의 행적과 관련해서 지역에 크고 작은 일에 관여하고 옥천군 내 각종 공사 현장 등에 지원을 한 기록이 보인다. 1911년 7월 수해로 구읍 실개천 제방이 무너지자 318원 을 내서 제방 공사를 하도록 했고, 옥천읍내 교량 개설비로 51원을 부담했다. 이와 함께 1917년 8월 대홍수가 나서 옥천 일원을 휩쓸었는데, 이해 10월 20일 옥천교 개통식에 ‘읍내 부자 오윤묵 씨의 집안 삼부자’가 참석..
옥천읍 구시가지인 교동리에 춘주민속관이 자리하고 있다.이 춘추민속관의 마당 한구석에 말뚝형태의 석조비석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당시의 일본왕 이였던 메이지천황(明治天皇)의 추모비이다. 왜 이 추모비가 이 곳에 자리하고 있는 걸까?옥천면지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기술되여 있다. 당시의 집주인 이였던 오윤묵이 지역유력자로서 일제의 통치에 부응하거나 도움을 주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이 든다.일본왕이 사망한데 대한 추모비이다.이 추모비에는 명치천황어일주년제기념비(明治天皇御一周年祭紀念碑)라고 적혀있다.또한 기념비의 뒷면에는 추모비의 설립연도를 대정이년칠월삼십일(大正二年七月三十一)이라고 적혀있다. 당시 일본의 왕이였던 명치왕은 연호를 메이지(明治)로 고치고 일본의 근대화를 이끌었다.우리에게는 1876년 강화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