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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절효부 (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남이면 갈원리 추모재옆에 자리한 보성오씨 가문에서 배출된 절효부들의 이야기를 비석에 새겨 놓았다. 절효비 3기가 자리하고 있다. 근간에 세운 듯 비석의 상태는 양호하다.
북이면 용계리에 있는 이 효부각은 1979년에 이호익(李浩益)의 부인 곡산 연씨의 효행을 기리어 전주 이씨 문중에서 세운 정려로서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는 효부문 편액을 걸었다. 그 앞에는 일각문을 세우고 주위에 담장을 둘렀으며, 1974년에 세운 기적비가 있다. 이 효부각은 1979년에 이호익(李浩益)의 처 곡산 연씨(1900~1960)의 효행을 기리어 전주 이씨 문중에서 세운 정려로서 정면 1간, 측면 1간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는 효부문 편액을 걸었다. 그 앞에는 일각문을 세우고 주위에 담장을 둘렀으며, 1974년에 세운 기적비(紀蹟碑)가 있다. 이 효부문은 북이면 용계리 마을초입에 자리하고..
초계변씨(1877~1939)는 평강인 전재우에게 시집와 부도를 지키며 길쌈으로 가업을 삼았다. 또한 시부모를 극진히 섬기고 남편을 공경으로서 받들었다. 시아버지가 병을 얻어 자리를 보존하자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약을 달여서 올렸다. 그러나 시아버지가 돌아기시자 예의로서 삼년상을 모셨다. 그 후 시어머니가 병이 들어 5년간을 머리를 빗기며 의복과 이불을 빨아 입히고 덮어 주었다. 상을 당하지 시아버지 때와 같게 하였다.불행이 겹쳐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오랫동안 병석에 눕자 밤낮으로 옆에서 수발을 들었으며 밤이면 북두칠성에게 기도하고 아침이면 초정약수를 길어다 미음을 끓여 간호하였다. 남편이 죽은후에도 자식들을 잘 키워 의로운 방향으로 교육을 시켰다.비석은 1975년에 세웠다. 비석의 전면에는 절효부초계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