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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진주성 비석군 (7)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진주시장이병문시혜송덕비(晋州市長李炳文施惠頌德碑)라고 적혀있으며 비석의 건립주체는 평거양수계원(平居揚水契員)으로 1964년 10월에 제작하였습니다.진주시장 재직시 평거면에 양수시설등을 설치한 시장 이병문의 치적을 기리기 위한 송덕비입니다.이병문은 제11대 진주시장으로서 취임은 1961.6.1-1965.3.31까지 3년 10개월간 재직하였습니다. 1961년6월1일 군부세력은 정부체제를 수립하고 진주 시장에 당시 이병문 계엄분실장을 임명 제11대 시장에 현역군인인 이병문 중령이 취임하게 된다
정부인남평문씨시혜불망비(貞夫人南平文氏施惠不忘碑)라고 적혀있으며 비석의 제작시기는 일제강점기시절인 대정6년(1917년)입니다.장재리주민들에게 베푼 남펑문씨의 덕을 잊지않기 위하여 세운 불망비입니다.
일제강점기시절인 1935년에 제작된 기념비입니다. 이종열이 평거구장으로 20여년간 일한 공로를 기리는 비입니다. 평거구장이종열씨기념비(平居區長李宗烈氏紀念碑)라고 적혀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진주군평거면민일동이 대정오년(1916년)에 세운 시혜불망비입니다. 비석에는 정공상진시혜불망비(鄭公相珍施惠不忘碑)라고 적혀있으며 농민 소작인에게 구제를 행한 행적과 은덕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비석입니다.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진주목사 성이성(成以性)의 선정을 기리는 비. 성이성은 본관은 창녕, 호는 계서(鷄西)이다. 인조 때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진주목사로 있을 때 어사 민정중(閔鼎重)의 보고로 선정이 조정에 알려졌다. 후에 청백리로 뽑혔으며 사후 부제학에 추증되었다. 1657년(효종 8)부터 이듬해까지 진주목사를 지낸 성이성[1595~1664]이 목사 재임 중 청빈한 생활로 백성들을 사랑하며 선정을 베푼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청덕유애비(淸德遺愛碑)이다. 귀부 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개석을 얹었다. 비의 전면에 “牧使成侯以性淸德遺愛碑(목사성후이성청덕유애비)”라 새겨져 있다. 1973년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 비석군에 옮겨져 관리되고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한규설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 1887년(丁亥年 고종 24년) 병총판 한규설이 등짐장사들의 세금을 감해주는 등 선정을 한 것에 대해 7개 고을 등짐장사들이 협력하여 건립하였다. 1973년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내 비석군(碑石群)으로 이건(移建)하였다. 비의 제목은 “병총판한공규설혁폐불망비(兵總辦韓公圭卨革弊不忘碑)”로, 비의 보존상태가 좋지 못해 비명(碑銘)을 전부 읽을 수 없다. “정해 2월 칠읍부상립(丁亥 二月 七邑負商立)”이라 하여 건립연대(1887년, 고종 24)와 건립주체를 밝히고 있다. 비문의 내용은 심하게 훼손되어 알 수 없다. 진주성내 비석군 가운데 서 있는데, 비의 훼손 상태가 심하여 보존 대책이 절실하다. 조선 말기의 애국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