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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암각자 (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청천면 화양계곡 능운대(靑川面 華陽溪谷 凌雲臺) (tistory.com) 청천면 화양계곡 능운대(靑川面 華陽溪谷 凌雲臺) 화양 제6곡 능운대(凌雲臺)는 큰 바위가 시냇가에 우뚝 솟아 그 높이가 구름을 찌를 듯하여 능운대라 한다' 에전에는 길이 없었을 때는 계곡에 맞닿아 있어 그 모습이 좋았겠지만 지금은 길이 나 king6113.tistory.com 능운대 각자는 능운대를 바라보며 채운암쪽으로 길을 걷다 능운대 바위정상으로 이어지는 곳에 바위위에 새겨 놓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능운대만 바라보고 길을 재촉하는 경우가 있는데 능운대 정상에 새겨진 각자를 찾아봄도 나름 의미가 있다.
선유구곡의 암벽에 각자되어 있는 최운대崔運大라는 이름의 각자입니다. 최운대崔運大에 관하여는 자세한 내력은 알수가 없습니다.
상야리(한매미,대야)는 본래 청주군 남일상면의 지역으로써 큰논이 있으므로 한배미 또는 대야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적리(객갱이, 벌터), 원동, 봉동, 한배미, 수반, 상검리, 하검리의 각 일부와 산내이하면의 안인동이 일부를 병합하여 상적동과 대야리의 이름을 따서 상야리라하여 청주시 남일면에 편입되었다가 1946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가덕면에 편입되었습니다. 그 후 평듬, 골뜸, 수반, 한배미, 남산뜸, 원동일부를 상야1리 벌터로 객갱이, 보도막재를 상야2리로 분구 되었습니다. 백족산에는 예부터 유명한 영천이 있어서 세조 임금께서 이곳에 발을 담그고 길고 긴 여행의 피로를 풀고자 했다고 한다. 그런데 잠깐 발을 담근 임금의 발이 갑자기 하얗게 변해버렸고 이로 인해 산 이름을 백족산이라..
미원면 가양리 수락골에 서계 이득윤선생과 관련된 암각자가 있다는 글을 읽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처음에는 개천쪽의 바위를 살펴보았지만 발견할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개천가를 돌아 보았지만 볼수가 없으니 발길을 돌리는 수밖에... 이튿날 경주이씨 종친회와 관련이 된 분을 수소문하여 글씨에 대해 질문을 하니 알아보고 전화를 준다고 하신다. 아마 여기저기 연락을 하셨나 보다. 수락영당 느티나무 뒷쪽 염소를 키우는 집 뒷편 바위에 있다는 정보를 전해주신다. 날씨가 영하로 떨어졌다. 수락골로 향하는 길에 군데군데 얼음이 얼었다. 12월이 제 몫을 하는 모양이다. 저어기 보이는 집이 염소를 키운다는 그 집이렸다. 방문을 하니 구순을 바라보시는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에 글..
청천면 귀만리 마을입구 느티나무 뒷쪽 바위암벽에 각자되어 있는 각자입니다. 귀만동천 만포정(龜灣洞天 晩浦亭)이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괴산중에서도 청천면은 우암 송시열과 얽힌 이야기가 많습니다. 동네의 지명인 귀만리 또한 우암선생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귀만동천 각자와 마주보고 있는 길 건너편으로는 마을의 안녕을 비는 석장승 2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원남면 덕정리에 있는 암각자 입니다 德亭(덕정)이라고 써있으며 옆에는 金奎五,奎哲(김규오,규철)이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동네에서는 김진사바위비석이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암각자가 새겨진 바위가 지금이야 그냥 조그마한 개울옆에 모습이지만 당시에는 그래도 제법 풍광이 있는 천렵하며 놀기좋은 장소가 아니였을까 생각해 본다. 일제강점기 시절 관찰부 판임관을 지낸 김규오와 김규철이 이 곳에서 자연을 즐기다가 바위에 암각하지 않았나 생각을 해봅니다. 동네에도 김진사바위에 대하여 아는 사람도 없고 한적한 곳에 자리하고 있어 겨우 찾았습니다. 원남면지에 의하면 1898년 판임관에 임명된 김규오의 임명장이 있는것으로 보아 그 당시 김규오가 바위에 새긴것으로 보입니다. 김규오가 새긴 바위각자는 예전의 청련암이 있던 바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