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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연풍면 행촌리호소사열녀각(延豊面 杏村里扈召史烈女閣) 본문
이 정려각은 열녀 이근립(李根立)의 처 백천호씨(白川扈氏) 호소사의 정려로 세운 것이다.
조선 인조 14년(1636) 연풍고을 관리로 있던 남편이 군량미를 거두어 강화도로 떠나게 되었다.
그 해 겨울에 호란이 일어나 남한산성이 함락되고, 강도(강화도)조차 적의 수중에 들어가 세자(世子)와 빈궁(嬪宮)이
모두 적의 손에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편의 안부를 걱정하던 호소사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전쟁터로 남편을 찾아 떠났다.
온갖 고생 끝에 강도에 다다라 남편을 찾아 헤맨지 수일만에 하늘의 도우심으로 남편의 시체를 찾아 이고 지고 하며
고향에 돌아와 장사한 후 남편의 무덤 앞에서 통곡하고 자결하였다.
이 사실을 안 관아에서는 호소사의 시신을 거두어 남편의 무덤 옆에 합장하고 마을입구에 열녀각을 세웠다.
열녀각 안에는 “烈女 律生李根立妻扈召史之旌閭” 라 쓴 편액이 있다.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낮은 담장을 둘렀다
#조선시대 여성은 노비층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이름을 공식적인 문서에 기재하지 않았는데, 결혼한 뒤에는 구분하기 위해 특별한 지칭어가 주어졌다. 양반 여성은 성씨 뒤에 씨(氏), 중인 여성은 성(姓), 평민 여성은 소사(召史)라는 용어를 붙여 신분 또는 계층을 구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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