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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남면 삼용리장충범신도비(遠南面 三龍里張忠範神道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원남면 삼용리장충범신도비(遠南面 三龍里張忠範神道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8. 26. 11:15

 

 

 

 

 

 

 

 

 

 

 

 

 

 

 

 

 

 

 

 

 

 

 

 

 

 

 

 

 

 

 

 

 

 

장충범 신도비에 대하여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 활동한 장충범의 신도비. 장충범은 자는 효칙(孝則), 본관은 단양(丹陽)으로, 생원 장언구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군자감주부로서 충주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부상당하여 향리인 삼생리로 피신하여 치료를 받았다. 1597년(선조 30)에 동지를 규합, 창의하여 삼생리 구진터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1605년(선조 38)에 교지로 녹권(錄券)이 하사되었고, 1857년(철종 8)에 충신의 정문이 내려졌으며,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생극면 생리에는 1971년 세워진 ‘임난공신장충범장군기념비’가 있고, 음성군 음성읍 삼생리에는 ‘장충범 충신문(張忠範 忠臣門)’이 있다. 총 높이 363㎝이고, 비석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경우 높이 218㎝, 앞면 82㎝, 측면 37㎝이고, 가첨석(加檐石)은 높이 75㎝, 앞면 140㎝, 측면 80㎝이며, 방부(方趺)는 높이 70㎝, 앞면 140㎝, 측면 230㎝이다. 전액(篆額)은 '국난공신증이조참판장공신도비명(國難功臣贈吏曹參判張公神道碑銘)'이다.

비제(碑題)는'유명조선국선무원종공신군자감주부증가선대부이조참판장공신도비명병서(有明朝鮮國宣武原從功臣軍資監主簿贈嘉善大夫吏曹參判張公神道碑銘幷序)'이다. 비문(碑文)은 김학수(金鶴洙)가 글을 짓고, 김녕한(金寗漢)이 쓰고, 전서(篆書)는 윤용구(尹用求)가 썼다.

 

 장충범은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효칙(孝則). 생원 장언구(張彦玖)의 아들이며, 부인은 청풍유씨(淸風劉氏)이다.음보(蔭補)로 벼슬에 나아가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가 되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났다.채유종(蔡有終), 조웅(趙熊) 등 여러 사람과 의병을 일으켜 5백여 명을 모아 6년간 싸우면서 가는 곳마다 승승장구하였다.1597년(선조 30) 음성의 생골 전투에서 싸우다가 장렬하게 순절(殉節)하였는데, 시신을 찾지 못하여 의관으로 허묘(虛墓)를 만들었다.묘소와 충신문 등이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 산소날에 있다.
 

1605년(선조 38)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3등에 녹권(錄券)되고, 1857년(철종 8) 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관(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에 증직되었다.“창의(倡義)하여 순절한 충(忠)은 일월(日月)을 관통하도다”라고 하였으며, 정려를 내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 충신문을 세웠다.


1860년(철종 11) 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에 가증되었고,
1870년(고종 7)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 정려문(旌閭門)이 건립되었다.광산 김재현(金在顯)이 정려기를 찬술(撰述)하고, 김학수(金鶴洙)가 신도비명, 김구수(金龜洙)가 묘지명,최병심(崔秉心)이 유허비문, 이은상이 기념비문 등을 각각 찬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