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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안면 문방리군방영당(淸安面 文芳里群芳影堂)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청안면 문방리군방영당(淸安面 文芳里群芳影堂)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10. 18. 06:02

 

 

 

 

 

 

 

 

 

 

 

 

 

 

 

 

 

 

 

 

 

 

 

 

 

 

 

 

 

이 영정은 이모본(移摸本)으로써, 원본은 청난공신(淸難功臣)에 책록된 것을 기념하여

왕명에 의해 입각도형(立閣圖形)된 공신상으로 추정된다.


신경행은 1596년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토벌하는데 홍주목사(洪州牧師) 홍가신(洪可臣)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출전하여

청난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상용형식은 좌안7분면에 공수자세를 취하고 의자에 앉은 정장관복차림의 전신 좌상이다.

이 것은 이모본이기는 하지만 7분면의 형용, 양어깨의 경사진 각도가 심한 차이를 보이며,

단령(團領)자락을 들고 앉음으로 인해 생겨나는 세모꼴의 형태, 단령의 트임새에 내비치는 단령내부의 옷감과 족좌대 밑에 깔린 채전 등은

조선중기 공신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그러나 신경행 재세시 모제의 경우 사모의 높이가 낮은데 반하여

이 초상화에는 사모가 높게 표현되어 있어 이모의 시기는 대략 조선 후기로 추정된다.

 

괴산군 청안면 문방3리에 위치하고 있다.

 

 

                                                                                                       신경행영정

 

 

 

신경행은 1547(명종 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산(靈山). 자는 백도(伯道), 호는 조은(釣隱). 자전(自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세주(世胄)이고,

아버지는 습독(習讀) 질(垤)이다. 1573년(선조 6)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57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2년에 한산군수가 되었고, 1596년에 충청도순찰사의 종사관이 되었다. 이 때 관내 홍주에서 이몽학(李夢鶴)의 난이 일어나자

난의 진압에 공을 세웠다. 다음해에 군자감정(軍資監正)이 되었고, 1604년에 청난공신(淸難功臣) 삼등에 책록되고 영성군(靈城君)에 봉해졌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 충청도병사가 되었으나 시정이 바르지 못하다는 암행어사의 지적을 받았다.

뒤에 예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다.